윤화영:(다 들리게 혀를 차며 환복하고 침상에 오른다. 곱게 키우긴 했지. 제멋대로 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대로 눈을 감는다. 고단한 눈꺼풀이 무겁게 감긴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습니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러 갔다가 나들이만 하고 들어오지 않나,
괴상한 사내에게 공격을 당할 뻔하지 않나...
당신은 눈을 감습니다.
...그러고서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새벽입니다.
돌연 그대 뒤로 찾아든 선득한 것을 감각하던 순간,
인기척에 눈을 떠보면 방 안에 그가 서있습니다.
연선화¿:(조용히 하라는 듯,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그대가 아는 선화와 꼭 같은 낯을 하고 있으나 분명히 다릅니다.
얼굴 곳곳에 가득한 상흔은 그에게 무언가 험한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하게 해요.
그는 말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지친 눈꺼풀 밑으로 그리움이 차오르고,
그것은 투명한 슬픔이 되어 얼룩진 뺨을 적십니다.
검은 소매로 눈가를 닦아낸 그가 이내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탓일까요?
억눌린 목소리는 처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연선화¿:(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 이내 다물고 만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 이불이 깔린 바닥을 바라본다) ...잘 계셨습니까.
윤화영:...바라는 게 무엇이냐?
네 놈은 선화인가?
연선화¿:(소리 죽여 웃고는) 제가 선화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윤화영:내가 키운 호랑이가 영월로 갔구나. (얼굴을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켜 앉는다. 어두워 상처도 옷도 흐릿하고, 은색 머리카락만이 밝게 보인다.) 날 죽이려고?
연선화¿:아.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황제가 다른 옷을 주지 않아서요.
제가 전하를 왜 죽이겠습니까?
윤화영:(황제에게 경어를 쓰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표정을 살피면 더 좋겠지만 보이지 않아 귀를 세운다. 호흡이나 망설임 같은 것. 기색.) 그럼, 밖에 있는 놈?
연선화¿:(헛웃음을 짓는다) ...저를 너무 무뢰배로 아시는 것 아닙니까? 잠시 재워뒀을 뿐입니다. 괜히 절 죽이겠다 설치면 위험하니까요.
윤화영:그러면?
연선화¿:(잠시동안 침묵하다가) 전하를 살리기 위해 돌아왔어요.
윤화영:허어... (느리게 눈을 끔뻑인다.) 내가 언제 죽는데?
연선화¿:...저잣거리에 떠도는 노래를 들어 보셨습니까?
윤화영:들었지. ...그러고 보니 정말 네 놈이 지었구나? 영월에서 글재주를 좀 갈고닦았나 보군.
연선화¿:매일 같이 듣던 것이 황제가 읊어대던 시가였으니까요. 귀동냥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익숙한 한숨 소리에, 그리고 목소리에 작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매로 눈가를 비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 노래는 전부 사실입니다. 저는 전하 뿐만 아니라, 이 도화국을 살리기 위해 돌아왔어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윤화영:(느리게 이어지는 잠긴 목소리를 듣다가 이불자락을 치운다. 침상에 한 다리를 올린 채 걸터앉아 숨을 길게 내뱉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연선화¿: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눈치보던 자들이 좋은 뒷배를 찾은 게지요. (쓰게 웃고는) 그러니 전하, 딱 사흘만 절 도와주십시오. 전하의 목이 떨어지는 꼴은 다시 보고싶지 않으니까요.
윤화영:오, (제 목에 손을 올리며 낮게 웃는다.) 너 혼자서 할 수 있다고? 계획을 말해보아라. 우선 듣고 생각하지.
연선화¿: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방법을 취해볼 뿐이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보여드릴 것이 있는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연선화¿:(고개를 젓는다) 이곳에서 저는 이름없는 떠돌이 예언가일 뿐입니다. 저들이 저 같은 것에게 이름을 알려주겠습니까?
윤화영:생김새라도 그려... ...아니다. 네가 설명하는 대로 내가 그리는 게 낫겠구나. 그래서 저 놈들은 무슨 계획이지?
연선화¿:들으지 않으셨습니까. 이 나라를 남김없이 태워버릴 계획이지요.
(*듣지)
윤화영:자세히 설명하라는 뜻이다. 넌 늘 말이 짧아. (한숨 쉬고 다 치우지 않은 술상 앞에 앉는다.)
연선화¿:이곳에서 저는 연선화도, 무엇도 아닌 무명에 불가합니다. 제가 저들을 돕는 것또한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서고요. 저들과 제가 한 패거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하. (마찬가지로 짧게 한숨 내쉰다) ...빈민굴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일은 함께 그곳으로 가보시지요. 그럼 그 계획이란 것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윤화영:망조로구나. (날선 기색이 잦아든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다가, 선화의 앞에 잔을 놓아주고 조금 남은 듯한 술병 하나를 든다.) 그러지.
연선화¿:(술잔을 받아들며) ...이번엔 이 나라가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윤화영:축젯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한 잔 따라준다. 이 어린 놈과 이런 식으로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될 줄이야.)
연선화¿:불길이 도성 전체를 덮었습니다. 처음엔 궁에만 불을 지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술을 한 번에 들이켜고는 입가를 닦는다)
윤화영:(잔을 채우고 선화의 잔도 채우려는데 남은 술이 없다. 다른 병을 가져와 따르며 끄덕인다.) 그리고?
연선화¿:(쓰게 웃고는) 전하의 목이 잘렸죠.
윤화영:영월 놈들이었느냐? (잔을 쭉 들이킨다.)
연선화¿: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윤화영:(술이나 더 채운다. 술병을 어찌나 비우셨는지 탁에 널린 게 술이다.) ...술을 잘 하는구나.
연선화¿:저도 나이를 먹었으니까요.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윤화영:내가 보기엔 아직 입관할 나이도 못 됐다. (서툴게 칼을 놀리던 어린아이를 보던 때처럼 웃으며 술을 기울인다.) 그 눈은?
연선화¿:아. (안대가 없는 눈을 만지작거리다가) ...제 안대를 가져다 주시겠습니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선화에게 건넸다던데요.
윤화영:어찌 그리 되었냐 묻는 것이다. 안대는 날이 밝으면 내주마.
연선화¿:전하께서 들으실만한 이야기는 아닐 텐데요... (말꼬리를 흐린다)
윤화영:(눈썹을 들어올리며 술이나 한 잔 더 한다.)
연선화¿:이만 입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니까요. (옅게 미소짓고는 빈 잔에 술을 따라준다)
윤화영:사흘 뒤에 나는 큰일보다야 더할까... 어명이니 어서 들려주거라.
연선화¿:정말 별 것 아닙니다.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이리 된 것이지요.
윤화영:(손을 들어 눈두덩이를 닿을 듯 말 듯 쓸어내린다. 딱딱한 흉터를 만지작거리다 손을 내린다.) 아깝게 되었구나. 네 놈은 눈이 참 귀한데.
연선화¿: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까? (화영의 손길이 닿아오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누군가 제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있는 이는 화영이었다. 그대로 눈을 감는다) 한쪽 눈이라도 남았으니 다행입니다.
윤화영:두 쪽 다 멀쩡할 것이다. (미소 지으며 잔을 든다.) 이것만 비우고 일어나자. 붕대는 선화 녀석을 시켜 다시 감아주마.
연선화¿:...안대만 가져다 주시면 됩니다. 과거의 저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낮게 대꾸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술잔을 기울이던 당신과 선화는 다시 기루를 나섭니다.
당신이 다시금 침전으로 돌아올 때 즈음에는 이미 날이 밝고 있습니다.
연선화¿:오늘 밤, 같은 시각에 찾아 오겠습니다.
선화가 훌쩍 사라지고, 침전은 고요 속에 잠깁니다.
마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요.
그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방 밖이 소란스러워집니다.
궁녀:선화 님!
침전의 문이 다급하게 열리고 내관과 궁녀들이 당신의 안위를 확인합니다.
침전 바깥에는 직전까지 함께했던 이와 똑 닮은 얼굴이, 마치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습니다.
궁녀:혹, 간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무사님께서 밖에 저렇게... (침전 바깥에 쓰러져있는 선화를 눈짓하며 화영의 눈치를 살핀다)
연선화:그놈이 정보를 알려주는 척 하면서 나중에 뒤통수를 친다면요? (말없이 종이를 바라보다가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윤화영:(이마를 콩 친다.) 직접 물어보거라.
연선화:(입을 삐죽 내민 채로 이마를 문지른다. 누가 봐도 불신하는 표정이다...)
윤화영:(그대로 볼이 찌부러지게 척 잡는다.)
연선화:? 므어? #$%$%^$% (뭐라 대꾸하다가, 화영의 손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윤화영:(크게 웃으며 놓아준다. 두건으로 잘 싸맨 머리를 헝클이고 돌담길로 돌아간다.)
뒤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욕은 아니겠죠?
윤화영:뭐라 하였느냐?
연선화: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전하도 참...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 화영을 앞질러간다)
윤화영:...어이쿠! 언놈이냐!
?! (홱 돌아봄)
윤화영:(느긋하게 팔을 붙들고 저잣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연선화:심장이 떨어질 뻔 했습니다. (투덜거리고는 따라간다) 또 어딜 가시려고요?
윤화영:거 참 가볍기도 하다. 저잣거리서 떠도는 소문을 들어보려는 참이다. 대놓고 도성 안에서 기름을 조달한 걸 보면 그리 치밀한 놈들은 아닌 듯하니 말이야.
연선화:그럼 앞으로는 전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윤화영:되겠느냐? (웃으며 그대로 걷는다.)
연선화:...안 되겠죠.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따라간다)
윤화영:아 그렇지. 사탕은 다 먹었느냐?
연선화:사탕이요? (허리춤에 걸린 사탕꾸러미를 열어보고는) 반절 쯤 남았습니다.
윤화영:...남았다고? (꿈뻑거리다 열린 주머니를 들여다본다.) 다 먹었나 싶어 사주려 했지. 그럼 이대로 좀 걷다 들어가자꾸나.
연선화:이 많은 사탕을 어떻게 벌써 다 먹어요? (말이 나온 김에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화영을 따라 걷는다) 이번 축제 때 하실 연설은 생각 해보셨습니까?
윤화영:생각할 것까지야. 지난 해랑 비슷할게다. 연설보단 불난리가 걱정거리다.
연선화:곳곳에 물을 길어 놓으라 명할까요? 불이 나기 전에 막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윤화영:기름을 쓴다지 않느냐. (저잣거리 어딘가에 시선을 두며 걷는다. 평화롭고 날도 좋은 까닭에 현실감이 없었지만, 한 눈이 흉하게 그인 선화의 얼굴만은 생생했다. 대체 어떤 불이기에 그리도 걱정하는가. 상처 하나 없는 얼굴에 시선을 두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모래나 준비해두라 이르거라.
연선화:...알겠습니다. (화영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대답한다)
선화의 얼굴에 가득했던 화상도 화재 때문에 생긴 걸까요?
혹은, 그것도 황제의 짓일까요?
정말로 예부상서가 누군가와 내통하고 있는 것인지, 대체 어떤 불이 도성을 휩싸는 것인지...
어쨌거나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고개를 들면 벌써 해가 지려는지 노을이 뉘엿뉘엿 저편에 깔려 있습니다.
일단은 돌아가 볼까요?
곧 선화가 찾아올 시간이니까요.
조금이라도 자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밤손님을 맞이하려면 말이에요.
윤화영:선화야. 오늘밤엔 내 옆에서 깨어 있거라. 목을 벨 놈이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지. 얌전히 있을 수 있겠지?
연선화:저를 무슨 곰으로 아시는 겁니까? 저는 평소에도 잘 깨어있다고요. 어제는... 방심했을 뿐이죠.
그놈이 보이기만 하면 바로 베어버릴 겁니다.
윤화영:어허. 허하지 않는다. (옆으로 자리를 옮겨 침상 옆자리를 두드린다.)
연선화:(두드리는 곳으로 꾸물꾸물 기어간다) 전하는 주무시고 계세요. 해가 뜨면 제가 그놈의 목을 들고 있을 겁니다. (결연한 표정)
윤화영:(어깨를 감싸고 토닥인다.) 너는 왜 도통 믿질 않느냐? 믿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만.
연선화:전하는 전하와 닮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제가 홀랑 따라가면 그렇구나, 하실겁니까?
윤화영:...간만에 할 말이 없구나. (통로가 있다는 벽 뒤와 장짓문을 번갈아보다 팔을 더 가까이 둘러 선화의 뒷목을 가린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겠지.
연선화:그런데 정말 안 주무실 겁니까? (걱정스러운 듯 화영을 바라보며) 그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어제도 밤새 나갔다 오셨다면서요?
윤화영:나라가 망한다는데 어찌 잠을 자겠느냐. (어떻게 얻어낸 왕위인데. 다음 말은 중얼거리며 잘 묶인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는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고, 만지작거리며 또 한 명의 선화를 기다린다.)
연선화¿:전하께서는선화가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으신가 봅니다? (삐뚜름하게 웃고는 다시 한 번 선화에게 칼등을 휘두른다)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윤화영: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연선화: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화영과 상대의 만담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전하. 진정 저놈을 믿으십니까? 전하를 아무렇지 않게 밀치고 칼을 휘두르는 놈을요? 더 볼 것도 없습니다. (화영을 옆으로 비켜세우고는 그대로 검을 고쳐쥔다)
도검
기준치:
80/40/16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연선화¿:(무표정한 얼굴로 공격을 맞받아친다)
도검
기준치:
90/45/18
굴림:
1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6
(선화가 주춤한 사이, 그대로 칼등을 내려친다)
도검
기준치:
90/45/18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피해:
3
연선화: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호기롭게 칼을 빼든 것이 무색하게, 선화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집니다.
멍이 강하게 들겠군요.
연선화¿:(칼을 집어넣고 그대로 몸을 돌려 입구로 향한다) 그래서, 도화국이 이대로 망하게 두실 겁니까?
윤화영:(쓰러진 선화를 내려다보다 헛웃음짓는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추동력. 남의 아래 서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조카를 죽이도록 이끈 그 오만한 성정이 끓어올라 대답하지 않고 화를 삭힌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도 선화인 것을. 숨을 들이쉬었다 길게 내쉰다. 한숨과 함께 말한다.) 외의나 가져오거라.
연선화¿:(피식 웃고는 겉옷을 챙긴다) 너무 아쉬워 하지는 마세요. 이 나라가 멀쩡해야 선화도 전하의 곁에 있을 것 아닙니까? (화영의 몸에 옷을 걸쳐주며)
윤화영:(팔을 끼우고 돌아선다. 그새 평소와 같은 얼굴이다.) 존망이 걸린 일인데 둘보단 셋이 낫지 않느냐.
...그런데 넌 어떻게 시간을 거스른 것이냐?
연선화¿: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과거의 제가 끼어드는 것은... (잠시간 머뭇거리다가) 원하지 않는다고요. 전하께서는 아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선화를 힐끔 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출구로 향한다) 이제 가시지요.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습니다.
윤화영:아니, 들어야겠다. (침상에 앉아 올려다본다.) 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
어떻게 돌아왔느냐?
연선화¿:(작게 한숨을 내쉰다) 왜 이리 고집이 세십니까? 나라의 존망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요.
윤화영:(침상에 두 팔을 짚는다.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다.)
연선화¿:(팔짱을 낀다) 전하께서 가지 않으시면 선화는 곧 다른 주인을 모시게 될 겁니다.
윤화영:황제 말이냐?
연선화¿:그게 누구든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전하는 곁에 없을텐데요.
윤화영:네 이야기로구나. 황제를 섬기기로 한 것은 네 결정이었느냐?
연선화¿: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전하.
윤화영:그러면. 날 받들지 않으면 네 목을 치겠다고 하기라도 했느냐?
나는 밤새 너와 떠들 수 있다. 아니면 선화에게 그리했듯이 내 목도 칼등으로 치고 네 놈 혼자 할 일을 하러 갈 수도 있겠지. 네 맘대로 하거라. 난 나갈 마음이 안 드는구나.
연선화¿: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장 나라가 망한다는데 쓸 데 없는 고집이나 부리고 있는 자를 주인이라고 구 년을 모셨으니 말입니다.
윤화영:9년이나 되었던가? 나이를 먹으니 가물가물해.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올려다본다.) 그렇게 말하기가 싫다면 혼자 가거라. 도화보단 네 비밀이 중한 모양이니.
연선화¿:(이마를 짚는다) 과거의 제가 엮이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윤화영:그래? 나는 어떻게 시간을 거슬렀는지 물었다.
연선화¿:(한참동안 침묵하다가) 말씀 해드리면, 저와 가실겁니까?
윤화영:해보거라. 처음부터. (침상 옆을 두드린다.) 도화가 망했다는 그날부터.
연선화¿:전하. 시간이 없다니까요. (여전히 문 앞에 서있다) 딱 한 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궁금하신 것 하나만요.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축제가 지나면 전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처음부터.
윤화영:그래. 처음부터 말해보거라. 도화가 망하고 너는 어찌 살아남았느냐? 영월로 간 것은 네 선택이냐?
연선화¿:네. 제 선택이었습니다. 죽는 게 두려워서 영월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제의 곁에 있었습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윤화영:그러면 왜 돌아왔느냐?
연선화¿:전하를 구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으니까요. 제 눈앞에서 전하의 목이 잘렸는데, 어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었겠습니까?
윤화영:(선화가 말하면 눈을 내리깔며 목을 매만진다. 다른 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일은 좀처럼 없으나 제 목이 잘려나갈 때 그 아이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그럼에도 살고 싶어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린 마음이 어떠했을지. 손을 내리고 다시 한번 손짓한다.) 시간은 어떻게 거슬러 왔느냐?
연선화¿:(화영을 바라보다가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는다. 그를 시야에서 밀어내려는 듯이) 황궁에서 기이한 신을 섬기고 있더군요. 매일같이 그 신에게 빌었더니 어느 날 답이 왔습니다.
윤화영:신이라... 그 신이 뭐라더냐?
연선화¿: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겠다 했지요.
윤화영:(허무맹랑한 듯 낮게 웃는다.) 기도만으로?
연선화¿:이 일이 다 끝나면, 황제의 목을 먹이로 던져 줄겁니다.
윤화영:(눈썹을 들어올린다. 정말인지 판가름하고 싶지만 불빛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저 멀리 선 선화는 어두운 형상으로만 보인다. 잠시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 녀석은 왜 재웠느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대답 말고.
납득할만한 대답을 내놓으면 일어나겠다.
연선화¿:... (눈을 뜨고 말없이 선화를 내려다본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선화를 바라보다가 입을 뗀다) 그 아이는 영월이니, 멸망이니 하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게요.
...이미 들어버렸지만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아직 전부는 알지 못하니, 괜찮을 겁니다.
윤화영:신이 정말이지 자비롭구나. 황제의 목을 바쳐 너도 그 녀석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니. (그 말을 끝으로 한참 말이 없다가 일어선다. 침상의 이불을 끌어 잠든 선화 위로 덮어준다.) ...가자. 안내하거라.
연선화¿:그렇죠? 황제와는 영 딴판입니다. (피식 웃고는 몸을 숙여 통로 밖으로 나간다)
윤화영:(가라앉은 얼굴로 선화를 따라간다.) 가는 길에 황제 이야기나 좀 해주거라.
연선화¿: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저도 그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윤화영:글쎄... 아 그렇지. 네 눈은 황제가 그리했느냐?
연선화¿:대체 뭐에 화가 났는지, 갑자기 칼을 휘두르지 뭡니까? ...전하와는 성정이 다른 자이지요.
윤화영:(작게 웃는다.) 나는 내 손을 더럽히지는 않지. 아깝게 됐구나... 아, 안대는 못 찾았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다녀야겠구나.
연선화¿:괜찮습니다. 그리 중요한 물건도 아니었고요. (따라 웃는다) 사람을 만날 일도 없으니...
윤화영:이대로가 낫다. (앞서가는 꼬랑지를 잡아당겨 제 옆에 서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로 간다고 했지?
연선화¿:보기 흉한 얼굴인데요. (휘청이던 것도 잠시, 금세 자리를 잡는다) 어제 그자들이 빈민가 이야기를 했으니 그곳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윤화영:내가 없으니 자신감을 잃는구나. (팔짱을 끼고 걸음을 맞춰 걷는다.) 이 옷으로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연선화¿:비어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축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더군요.
윤화영:거길 전부? 보고받은 적이 없는데. 그들은 어디로 갔지?
연선화¿:예부상서와 그 무리들이 손을 쓴 것이겠지요. 빈민들이 어디로 갔는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요?
구불구불한 통로를 걷고, 또 걷고...
그 끝에 있는 뚜껑을 밀어 열고 나서면 또 다른 복숭아나무 숲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선화¿:(통로 밖으로 훌쩍 빠져나가 화영을 향해 손을 내민다)
윤화영:(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본다.)
복숭아나무가 가득합니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화가 발걸음을 옮깁니다.
앞선 등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어둑하고 음침한 뒷골목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뒷골목의 곳곳에는 빈 집이 가득합니다.
무언가를 숨겨놓기에는 아주 제격인 곳이죠.
그렇지만 이 많은 집 가운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단박에 알기란, 영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연선화:(화영의 볼을 쿡 찌르며 툴툴댄다) 어서 일어나세요.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윤화영:(눈을 깜빡이다 일어난다.) 꿈이라도 길게 꾼 것 같구나.
슬슬 가야겠다. (옷을 가져오라는 듯 손짓한다.)
연선화:이대로 김밥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화영이 일어나면 그제야 이불 속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옷을 들고와 화영에게 걸쳐준다)
음? (그러다 방 한편에 놓인 검과 종이들을 발견한다) 저건 뭔가요?
윤화영:네 놈이 김밥이 되면 나야 편하지. 칼을 못 쓰게 될 것은 단점이다만... 아, 네가 들 것들이다. 들고 따라오너라.
연선화:(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챙겨든다)
윤화영:(대전으로 향한다.)
저것들을 보니 그제야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해집니다.
당신은 대전으로 향합니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뿐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그대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유일한 군주니까요.
축제는 시작되었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도화국의 왕이시여, 무엇을 해볼까요?
윤화영:(어좌에 올라 대신들을 내려다본다.) 기다리느라 고생들 하셨소. 내 간밤에 잠을 설치어 시작이 늦어지게 되었소이다.
대신:(걱정스레 화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축제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전하께서는 걱정을 더시고 돌아가 쉬셔도 될 듯 하옵니다.
윤화영:내 걱정을 덜긴커녕 부추기는 놈들이 있는데 어찌 쉬겠느냐... 아 그래. 내 간밤에 예부상서의 분실물을 찾았다. 선화야, 보여주거라.
연선화:예? 이것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문하던 것도 잠시,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느끼고 들고 있던 것들을 재빠르게 내려놓는다)
이재하:전하, 송구하오나 저는 잃어버린 것이 없사옵니다.
윤화영:그래? 선화야. 그 칼 좀 들어봐라. (피에 젖은 -짐승피지만- 칼날을 바라보며 과장되게 인상을 찌푸린다.) 아주 섬짓한 걸 잃어버리셨더이다.
연선화:(시키는대로 검을 번쩍 든다)
신하:...전하, 저것이 무엇이옵니까?
윤화영:예부상서의 칼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병장기들과 함께 도성 한복판에 숨겨져 있더이다. 밤사이 잠행을 나섰다 발견하고 내 어찌나 놀랐는지.
그 많은 무기들은 무슨 연유로 모으셨소?
이재하:(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 것이 도성 한복판에 있었다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누군가 제 사가에서 훔쳐낸 것이겠지요. 모함입니다.
윤화영:허어. 선화야, 그 종이들 좀 읊어보겠느냐?
연선화:예? 제가요?
(또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칼을 후다닥 내려놓고 종이를 집어든다)
(종이의 내용을 눈으로 읽다가 눈에 띄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저도 모르게 화영을 돌아본다) 전하, 이게...
윤화영:너도 간밤에 보지 않았느냐. (마저 읽으라는 듯 고갯짓한다.)
연선화:제가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가 겨우 목을 가다듬고 글월을 읽어나간다. 여전히 화영과 대신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황제께서 지시하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화제 첫 날,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사이 도성 곳곳에 불을 놓고 그 사이 왕궁을 쳐 승기를 가져올 것.
둘째, 도화국의 관리들을 매수해 일을 진행시킬 것. 셋째, 이재하는 가장 열성적으로 계획에 임하고 있으니 포상할 것. 그리고 넷째... ...? (명백하게 당황스러운 얼굴로, 또다시 화영을 바라본다)
윤화영:되었다. 예부상서. 이만하면 내가 자네의 목을 쳐도 불만이 없겠지?
예부 관리:전하, 저것의 진위를 어떻게 판단한단 말입니까? 누군가 축제를 앞두고 예부상서를 모함한 것이라면요? 예부상서께서 그럴 리 없사옵니다!
윤화영:직급과 이름을 밝히고 말해주시게.
이재하:되었네. (자신을 옹호하는 관리를 만류하고는) 하하... 저런 것은 또 언제 찾고 계셨습니까? 소인, 정말 놀랐습니다!
모양 빠지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전하? (화영을 비웃는다) 전하께서 왕위에 눈이 멀어 패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요! 그러니 내려야 할 비가 내리지 않고, 제때 피어야 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윤화영:천운은 내게 있으니 간언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과 시간마저 짐의 편에 있으니. (고개 돌려 선화에게) 이 상서를 데리고 가 있거라. 데려가는 김에 입도 막고.
이재하:저를 없앤다고 이 나라가 평안할 것 같습니까? 옛말에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원인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소인을 벌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시지요! 하하... (화영을 노려보며 소리친다)
연선화:...예. 감옥에 데려다 놓겠습니다. (얼굴이 잔뜩 굳은 채로, 예부상서에게로 다가간다)
윤화영:(그러니 세자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닌가! 즐거워하며 크게 웃는다.) 그래. 데려가거라.
예부상서는 생각보다... 순순히 선화를 따라갑니다.
이미 들킨 마당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일까요?
대신:(대전을 빠져나가는 재하를 노려보다가, 다시 화영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전하. 이는 그냥 넘어가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예부와 예부상서의 사가에 군병을 보내 그 무리를 잡아들이고, 가담한 자들을 전부 찾아내셔야 하옵니다.
윤화영:내 어련히 처리하지 않겠습니까. 이 좋은 날 저잣거리에 보기 안 좋은 것들을 걸어둘 순 없지요. 이미 가담한 대신들의 명단도 확보했으니 걱정 마시오.
대신:제가 괜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그래도 혹여 더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 모르니... 예부는 수색하는 것이 옳다 여겨지옵니다, 전하.
그러고 보니... 방금 예부상서를 옹호하던 이도 예부의 관리였지요.
윤화영:경의 말이 옳소. 예부도 그러하고 축제를 관장한 부서도 함께 수색하도록 하지요. 또 제안들 있으신가?
대전은 고요합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기란 쉽지 않지요.
누군가는 분을 삭이고, 누군가는 눈치를 봅니다.
윤화영:없다면 이대로 회의를 마치겠소. (피곤한 듯 눈 사이를 주무르며 말한다.)
대신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일을 끝마친 선화가 당신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연선화:전하. 괜찮으십니까? 예부상서는 순순히... 감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윤화영:(무거운 몸을 일으켜 대전 밖으로 나간다. 목소리를 낮춰 흘러가듯 말한다.) 도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도화가 말 몇 마디로 망하겠느냐. 오늘 밤에 난다는 그 불만 막으면 공성전으로 시간을 끌 수 있으니... (말하다 말고 선화를 돌아본다.) 그렇지. 지금 가서 그 놈 발목이나 좀 끊어놓고 오거라.
연선화:(아무리 무인으로 자랐다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해친 전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평화가 길었던 탓이다.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반문한다) ...발목을요?
윤화영:네 주상은 누구냐? 널 구해내서 이 자리까지 올린 이가, 네가 모신다 맹세한 이가 누구였느냐. 너는 날 기만해서는 안 된다. 너는 늘 진실해야 하고... (무리할 정도의 요구는 반쯤은 선화가 원한 것이요, 반은 자신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명예와 힘 이전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자리 이전에 바로 그것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바라고 원하는 건 그것이었다.)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연선화¿:저의전하는 이미 칠 년 천, 목이 잘리셨는걸요. 전하의 입술이 잘못된 방향을 찾은 것 같습니다. (삐뚜름하게 웃는다) 전하의 곁에 있는 선화가 늘 진실하게, 전하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악몽을 꾸었다 생각하세요. 어떻게 한 하늘 아래, 두 명의 선화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전하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리하여 전하께서 돌아가신 겁니다. 선화를 너무 곱게 키워서요. 전하의 말에 반발하지 못하는 아이로 키워서요.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화영이 죽던 날의 기억이다. 평화에 젖어 살아온 무사에게 살생은 낯선 것이라, 자신이 손을 쓸 새도 없이 그가 살해당하고 말았던 날의 기억. 불쑥 튀어오른 그것을 떨치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쉰다) 지난 세월간, 좋은 신하란 잘못된 명에 반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윤화영:내 명이 옳은지 그른지 네가 어찌 헤아릴 수 있다고... (한숨 쉬고 남자를 바라본다.) 선화에게 정확히 무엇을 받기로 했지?
이름 없는 자:(고갯짓으로 나이 든 선화를 가리키니다) 저놈을 받기로 했다.
윤화영:선화를 받는다는 건 무슨 뜻이지? 네놈이 데려가 키우겠다고?
이름 없는 자:내가 키운다고? 저놈을? 하하, 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글쎄. 저놈을 죽일지, 키울지, 찢어 발길지는 새 주인 될 놈이 정할 일이지. 그걸 내가 왜 너 같은 것에게 알려줘야 하느냐?
윤화영:내가 알게 된다면 더 재밌는 대화를 볼 수 있을 텐데. 그걸 바라서 데려가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름 없는 자:시간을 여섯 번이나 되돌렸으니, 키우기엔 손이 많이 갈 테지. 몸도 성치 못할테고. (선화의 주위를 천천히 걷는다) 간식으로 먹으면 딱이겠구나.
내가 이놈을 한입에 먹어 치우겠다고 하면, 네놈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이냐? (흥미롭다는 듯 화영을 바라본다)
윤화영:(선화를 어떻게 할지 정하지 않았다면. 더 재미있는 것을 내놓으면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가진 것이라곤 세치 혀뿐이나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눈치를 보는 어린 선화의 어깨를 감싸 끌어온다.) 이 선화를 대신 먹으라 던져주고 저 당돌한 녀석의 표정을 구경할 것이다.
이름 없는 자:흠? 그놈을 대신 바치겠다는 것이냐?
나는 반드시 하나를 가져가야만 해. 그것이 이 아이가 맺은 약조의 대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니 사람에는 사람이 맞지 않겠느냐. 그러니 네가 그 아이를 바치겠다면 이놈은 살려주마. (상처입은 선화의 어깨를 툭툭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