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Cleef
……
눈을 감았다 떠도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그대뿐입니다.
돌이켜보면 기억 속 마지막 순간이 흐릿합니다.
몸에 잔상 처럼 남아있는 고통을 밧줄 삼아 겨우 어렴풋한 흔적을 쥐어 잡으면ㅡ
그제서야 돌연 눈앞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따라온 것은 잔혹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놓아야 했던 손 가운데 어느 것도 놓을 수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대는 분명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대가 귀중히 여겨 놓고자 하지 않았던 것들 전부를요.
당신을 소리쳐 부르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선연합니다.
그대가 후회하지 않더라도 분명 선화가 원했던 선택은 아니었겠지요.
그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일곱 번이나 되돌린
그 아이가 원하던 결말은 결코 이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쓰고 아픈 기억에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추스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고이 모아 빚은 것만 같습니다.
그대의 뇌리로 전해져오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길을 여는 자: 다시 한 번 그를 네 손 안에 두고 싶은가?
목소리가 칭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그 선택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근거없는 예감이 현실로 이루어진 걸까요?
순간 숨통을 틀어쥐는 감각이 심장을 두드립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명백하게 끼쳐 오르는 환희와 희망.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번져오는 괴로움과 자책감 같은 것들이 전부 뒤섞여…
무어라 말하려, 혹은 이 막혀오는 숨이라도 내뱉어야 할 것 같은 감각에 입술을 벌리면
얄팍한 기다림마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요.
길을 여는 자: 내가 묻겠다. 네놈은 무엇을 원하느냐?
윤화영:하, ...... 내가 가졌던 것들 전부!
길을 여는 자: 네놈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었는데?
윤화영:내 나라, 내 이름과 온갖 진귀한 것들, 한때 도화였던 것들 전부. 그것들이 전부 나의 것이었어.
길을 여는 자: 그래. 그럼 그것을 위해 네놈은 무엇까지 내놓을 수 있느냐?
길을 여는 자: 네 증명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내가 질문을 했으니, 너는 대답을 하면 되지. 말보다 쉬운 게 어디 있다고?
그러면 내 두 손이라도 가져가라. 네게 무슨 가치가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것이 다시 입 꼬리를 끌어당겨 웃습니다.
그러자 어둠뿐이던 곳에 미약하나마 일렁이는 불꽃이 번져 듭니다.
몇 번인가 반복되고 나면 그제서야 주변이 조금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앞의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정도가 전부지만요.
물론 보통의 사람은 아닐 테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처럼 생긴 것이겠지요.
온통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사내.
흰 것이라곤 웃을 때마다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이 뿐입니다.
길을 여는 자: 나라를 다시 되찾고 싶다면서, 손목을 내놓으면 상소문은 어찌 읽으려고?
(여전히 웃는 채로, 화영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온다.) 네 멍청한 선택으로 네 나라는 멸망했다. 네가 아끼던 놈 역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다른 한 놈이 해왔던 수고는 모두 헛수고가 되었지.
네가 가졌던 것을 전부 되찾고 싶다 했느냐? 네 실수를 되돌릴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그놈이 그리했듯, 나와 계약하는 것이지.
윤화영:어차피 그 제안을 하려던 심산이었으면서 나를 길게도 조롱하는군. 좋아. 계약하지.
길을 여는 자:성질이 급하군. (웃긴 장면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의 기회 뿐이다. 그놈을 도왔던 것처럼 네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야.
단 한 번이다. 알겠느냐? 두 번은 없어. (화영에게로 또다시 한 발자국 다가간다.)
길을 여는 자:네가 바라는 것과 같지. 네가 도착한 그곳에서 나를 부르면 된다.
윤화영:(허탈하게 웃는다. 단 한 순간 가지고 나면 바로 다음 순간 다시 빼앗기는 것이다.) 무어라 부를까?
길을 여는 자:이미 방법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네 신하 중 하나가 네 궁 안에서 나를 불렀을 텐데?
길을 여는 자:하하! 남의 것을 희생해서 자신의 것을 취하겠다, 라. 과연 인간들의 왕 답구나.
길을 여는 자:나는 너와 같은 것을 바라니까. (이가 드러나도록 씩 웃는다.)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 공간도, 눈앞에 있는 것도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가 몇 번이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반복해가며 그대에게로 돌아왔던
이미 한 번 일어난 일이라면 분명 두 번도 가능하겠지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선화에게 검을 쥐여줬던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이뤄낼 수 있다 이야기하는 존재에 비해 그대는 얼마나 무력한가요.
이 순간이 정말로 그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잃은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조차도 없지만…
때로 인간이란 머리로 아는 것보다 본능을 믿어 버리고 마는 걸요.
그 사이를 비집으려 드는 미묘하고 작은 불신 같은 것은 금방 밀어 넣을 수 있을 만큼요.
그대가 계약에 수긍하면 눈앞에 선 이는 아주 즐겁게 웃습니다.
꼭 원하던 것을 얻은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러나 그것은 선화의 손에 들려 있던 때와는 분명 다릅니다.
길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분명 선화가 제 몸을 찌를 때까지만 해도 붉기는 했을지언정 이토록 검지 않았던 물건입니다.
분명 그러했을진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윤화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본디는 희었을 것이건만 처음 보았을 때는 붉었으며,
그리고 그가 어떻게 시간을 되돌렸는지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 검은 은장도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길을 여는 자:이번엔 네게 그것을 주겠다. 그 검으로 네 심장을 찌르면, 그것이 계약의 증표가 될 것이다.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말에 시선을 마주하면, 눈앞의 자는 다시금 히죽 웃습니다.
소리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무어라 전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 수 있어요.
손에 얹힌 그 무게가 묵직하게 심장을 짓누릅니다.
길을 여는 자:양 손목을 잃는 것보다는 나은 장사가 아니더냐? 고작 심장을 찌르는 것이 두렵다 하지는 않겠지.
윤화영:(괴상한 것을 쳐다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작은 검을 만지작거린다. 한 뼘도 되지 않는 이 칼은 전부 찔러넣어야 겨우 심장에 닿을 것이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길을 여는 자:그럼 어서 찔러 보거라. (팔짱을 낀 채 화영을 구경한다.)
윤화영:취미 한 번 고약하군. (지켜보고 선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오른손으로 칼을 단단히 쥐고 허공에 한두 번 궤적을 그린다. 그리고 세 번째. 숨을 들이마시고 찔러넣는다.) 커헉, (살을 뚫을 기세로 박아넣었지만 갈비뼈에 가로막혀 전부 들어가지 못한다. 피가 기침처럼 터져나온다. 칼을 뽑아 다시 찌른다. 뼈를 부술 때까지. 단단한 뼈와 폐부를 비집고 칼이 심장에 닿을 때까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진다. 미친듯이 기침을 토해낸다. 한 팔로 겨우 바닥을 짚고 그를 올려다본다.)
한순간의 고통을 견디면, 그 얄팍한 가능성이란 것이 열릴테니까요.
그것을 분명 붙잡을 수 있음을, 그대는 알고 있습니다.
새까만 단도가 살갗을 뚫고, 심장에 닿습니다.
길을 여는 자:생각보다 열정적이군.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엄지와 검지를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낸다.)
그 고통은 마치 얼음과 불꽃을 닮아 있었습니다.
온 몸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혹은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감각의 잔여물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본디라면 심장이 박동해야 할 자리 위로 무엇인가 덧그려집니다.
꼭 그대 심장을 보호하는 갑옷처럼 단단 하게 감싸고도는 것이
어딘가 묘하게 든든하고 따스하기까지 한 걸요.
한 번 크게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그제서야 그대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칩니다.
길을 여는 자:맹약이 이루어졌으니, 마땅한 곳으로 길을 열어 주마.
다시 한 번 그 입술이 호선을 그리던 때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점멸합니다.
제대로 정신을 붙들려 하지만, 이내 눈앞이 어두워지고
이 기나긴 여로가 끝날 때에는 다시 그대 곁에 선화가 서 있을까요?
어디선가, 그윽한 도화(桃花) 향이 났던 것도 같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청명한 여름의 햇살이 그대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가장 먼저 시야에 담기고 무언가 얹힌 것처럼 무지근한 몸을 일으키면,
그제서야 제대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와요.
저 멀리로는 장엄하게 솟은 건물이 수없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소리가 왁자지껄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 익숙한 것 하나 없네요.
분명 그자는 그대 스스로에게 마땅한 곳으로 보내 주리라 하였는데…
적어도 이곳이 그대가 사랑하던 도화의 일상과 다른 곳,
다른 시간이라는 것만은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곁을 둘러보면 아마도 이곳은 공원과 비슷한,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한 쪽으로는 민가로 보이는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고
다른 쪽을 바라보면 손님으로 북적이는 [객잔]이 보입니다.
손님이 굉장히 많은 듯 객잔의 규모가 무척이나 커요.
건물 몇 채가 바삐 오가는 종업원들과 손님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윤화영:(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다가 객잔으로 들어간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저 객잔으로 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분명 이 곳의 지도를 얻을 수도 있겠죠.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객잔으로 다가갈수록, 도화의 기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규모에 놀라움이 듭니다.
이 정도로 손님이 붐비려면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들고 나는 이들이 많아야겠지요.
그러한 이들은 대부분 유명한 경관을 보러 오려는 이들이거나, 볼일이 많은 이들일 것입니다.
전자라면, 이곳은 풍경이 수려하다 알려진 어느 곳이겠고
후자라면... 아마도 한 나라의 도읍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그대의 지갑 사정은 여유롭던가요?
설마 그놈이 누더기를 입혀보낸 것은 아니겠지요?
그제서야 자각한 사실에 급히 스스로를 살펴보면...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2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차려입고 있는 옷은 일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부족함이 없는 복식입니다.
누군가를 마주한다면 높으신 분이라며 머리를 조아리거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부잣집 도련님 즈음으로는 취급을 해줄 것이 분명해요.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몇 해 전, 선화의 꿈 속에서 보았던 ‘그대’가 꼭 이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대략 감이 올 것 같기도 해요.
주머니를 뒤져보면 찰그랑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패물과 금으로 된 장신구가 한 움큼 손에 잡힙니다.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에는 넉넉하다 못해 물처럼 써재껴도 될 지경입니다.
종업원: 분명 처음 보는 나으리신데... 하지만 이런 (돈 많은) 분을 제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구먼유...
아무튼,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실실 웃으며 화영을 객잔 안으로 안내한다.)
윤화영:(얼떨떨하지만 금세 익숙해져서는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객잔 안으로 들어섭니다.
객잔 안쪽은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웃는 소리로 떠들썩합니다.
객잔 한 구석에서는 악공과 소녀가 짝을 이뤄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구슬픈 가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흥겨운 곡조입니다.
놓여있는 탁자들 가운데 구석진 것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으면,
종업원: 나으리! 무엇을 드릴까요? 시장하지는 않으신지요?
윤화영:먹을 것은 되었고... 술이나 한 병 주시오. 그리고 말 좀 물읍시다.
종업원: 술 한 병, 그리고... 예?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종업원: 지도요? 아, 혹시 과거시험을 치러 오신 나으리십니까? 아니, 그러면 지도가 필요 없으실텐데... (횡설수설하다가) 술과 함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종종걸음으로 사라진 종업원은, 곧 술병과 지도 한 장을 들고 다가옵니다.
종업원: (술병과 잔, 지도, 그리고 유과가 담긴 작은 접시를 화영의 앞에 내려놓는다.) 여기 있습니다, 나으리!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윤화영:생기면 부르겠소. (웃으면서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곧장 지도를 편다.)
이름을 보아하니 이곳은 영월의 수도인 '공명'인 모양이에요.
지도엔 영월황궁과 언덕, 여러 지구들이 간략한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자는 도화국이 멸망한 후의 영월로 당신을 보낸 모양입니다.
이곳에 오는 것이 당신의 것을 되찾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윤화영:(영월을 주겠다는 것인가 곰곰이 고민해본다. 무슨 재주로? 영월 황제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줄 놈은 생각도 없는 고민을 이어가다가 관두고 지도를 접어 품에 넣는다.) 이보게-
종업원: 예에! 부르셨습니까! (허겁지겁 달려온다.)
윤화영:영월 이야기 좀 해주게. 요즘 재미있는 일 없는가? 아니면 큰일이라든지.
종업원: 예? 재미있는 일이요? (당황한 듯 하다가) 으음... 나으리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십니까? ...연애 이야기? (속삭인다.)
윤화영:무엇이든. (어깨를 으쓱이며) 근래에 어찌 돌아가나 궁금해서 말이오.
종업원: 으으으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일주일 전에 태관령께서... 수라간의 반찬을 훔쳐 드시다가 걸렸다고 합니다!
종업원: 그, 그러면... 으으으음...! 후궁전의 환관 하나가 궁녀와 눈이 맞아 도망쳤는데 글쎄... 얼마 전에 제발로 궁으로 걸어들어왔다고 합니다!
윤화영:(이번 것은 약간 재미있는지 눈썹을 들어올린다.) 왜? 마음이 그새 식었다든가?
종업원: 아이, 그것이... (화영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환관은 그... 없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하하!
좀 쓸모있는 이야기는 없소?
종업원: 그, 그, 그럼... 에잇, 좋습니다. (팔을 걷어붙인다.) 저희 객잔에서 돈을 아주 펑펑 써주시는 나으리가 계신데, 그분이 도화국 출신이란 말이죠?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폐하께서 직접 거둔 도화국 포로 중 하나가 폐하를 아주 꼭 닮았다고 했습니다!
더 말해보시게.
종업원: 이건 좀 흥미가 생기십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런데 저도 다른 건 모릅니다! 그분도 자세한 건 말씀해주지 않으신다고요.
그런데 그분이 폐하 때문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건 자주 들었습니다. 자기는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인데, 폐하께서 합당한 대우를 해주시지 않는다나, 뭐라나.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길 것이지!
뭐, 어쨌든... 그 포로라는 자가 도화국의 왕을 지척에서 모시던 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나 폐하와 닮았는지, 관리들이 아주 난리가 났다고요. (화영에게 속삭인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그놈을 가둬두고 있으시다고 합니다.
윤화영:(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난다.) 그놈 생김새가 특이하다고는 안 하던가?
종업원: 글쎄요, 저는 본 적이 없는데 폐하와 닮았다고 했으니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하하! 물론 전 폐하의 어진도 본 적이 없지만서도... 그분이 은색 머리에 파란 눈을 가졌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고요.
윤화영:호오. (술을 따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눈웃음을 친다.) 고맙소. 아주 재밌는 이야기들을 알고 계시는구료.
종업원: 이곳은 온갖 소식이 다 모이는 곳이니까요.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는 이내 자리를 뜬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나으리! 궁금한 게 있으면 또 물어보시고요.
돈을 펑펑 써대는 나으리도, 황궁에 잡혀있는 포로도...
어쩐지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변변찮은 신분도 없는 당신이 어떻게 황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선 나가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윤화영:(식탁 위에 값비싸 보이는 팔찌 하나를 올려두고 나온다.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끌벅적해 보이는 상업지구로 걸음을 옮긴다.)
당신은 객잔을 나서, 상업지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걸칠 것들을 판매하는 포목점, 기호 물품들을 파는 약재상과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기루, 도박장…
규모가 큰 만큼 그대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은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굴을 가릴만한 것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왕인 당신의 얼굴을 아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윤화영:(상인에게 다가간다.) 여보게, 멱리 하나만 주시게. 튼튼한 것으로.
상인: 멱리라... 멱리... 그런데 잘생긴 얼굴은 왜 가리려는 거요? 하하... (잔뜩 쌓여있는 천 덩어리들을 뒤적거리다가 화영의 머리색과 닮은 검은 멱리를 하나 건넨다.) 여기있소. 단돈 18전!
윤화영:
재력
기준치: |
30/15/6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
8전밖에 안 돼보이는데?
상인: 어허... 8전이라니? 이 양반이 대체 어디서 살다 온 거야? 요즘 전쟁때문에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데! (어림없다는 듯 팔짱을 낀다.) 돈이 없으면 싸게싸게 비켜요~ 다음 손님 기다리시니께!
윤화영:전쟁이랑 모자값이 무슨 상관인가? 멱리 쓰고 싸우는 것도 아니거늘. 8전에 주시게. 내 부탁하네. (멋지게 웃어본다)
윤화영:
매혹
기준치: |
60/30/12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상인: 잘생긴 얼굴 아깝게 가리지 말고 썩 가슈! 어디서 나뭇잎이라도 머리에 얹고 다니던지!
윤화영:(심기불편) 거 속좁아서 장사 하겠소? (다른 모자가게로 가본다.)
윤화영:(가게 문에 달린 천자락을 들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뒤로 역광이 비친다...) 멱리 한 개만 싸게 줄 수 없소?
다른 상인: 으으음? 멱리? (대충 옆에 놓인 아무 멱리를 던져준다.) 여기있소! 돈은 11전만 줘요.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가격이 저렴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멀쩡합니다.
다른 상인: 돈은!? (손바닥을 척 내민다.)
윤화영:
재력
기준치: |
30/15/6 |
굴림: |
2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엽전을 세본다... 있다! 기쁘게 건넨다)
다른 상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돈을 받아든다.) 고마워요! 좋은 하루 되길!
상인은 하던 일을 마저 하려는 듯, 등을 돌립니다.
모자도 샀겠다, 이제 나가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윤화영:(가게를 나와 상점가를 걸어다녀본다. 도박장이나 주루 같은 곳들이 문을 열었나 들여다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문이 열려 있습니다.
윤화영:(개중 한 가게로 들어간다.) 안녕하신가.
도박장 주인: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화영의 옷차림을 훑더니 마치 십년지기 친구마냥 어깨동무를 한다.) 나으리,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습니까요? 다른 놈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죠... (친한 척을 하며 자연스럽게 화영을 주사위가 깔린 판으로 데려간다.)
윤화영:음? (얼떨결에 따라가 앉고는) 얼마나 걸려 있는데?
도박장 주인: (한쪽에 앉은, 눈이 퀭한 남자를 가리킨다.) 저 나으리께서 지금 이틀동안 집에 안 가고 계셔서 무려 258전이 쌓여 있습니다! 이기는 놈은 팔자가 완전 펴는 것이지요! 하하!
윤화영:그렇군 그래? (패물 하나를 내어놓는다. 돈이 좀 있으면 이놈 저놈 매수하기도 쉽겠지 싶은 생각이다) 어디 한번 해볼까.
도박장 주인: 아이고, 이런 귀한 것을! (함박웃음을 지으며 패물을 잔뜩 쌓인 금붙이들이며, 엽전으로 만들어진 산 위에 올려놓는다.) 여기 계신... 그... 그... (화영의 이름을 짐작하는 듯 말을 더듬다가) 아무튼, 나으리께서도 판에 끼시겠답니다!
자자, 나으리도 주사위 하나 받으시고...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일 높은 수를 세 번 연속으로 굴리시면 여기있는 돈을 다 가져가시는 거지요!
도박장 주인: 여섯, 여섯, 여섯이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지요! 하하! 하지만 다섯, 셋, 넷을 굴리시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만 숫자가 높으면 이긴 것으로 쳐드린답니다.
하지만 나으리보다 더 높은 주사위를 굴린 나으리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내놓으신 패물은 못 돌려받으십니다? 하하하...
눈 밑이 퀭한 남자: 입 닥치고 빨리 시작이나 해! (불안한 듯 손을 덜덜덜덜 떨고 있다.)
도박장 주인: 아이고, 왜이리 참을성이 없으실까... 사람이 많아지면 나으리께서 가져가실 돈도 많아지니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윤화영:입 다물고 주사위나 돌리게. 밤새도록 떠들다 가겠군.
도박장 주인: 그럼 (눈 밑이 퀭한 남자를 가리키며) 이 나으리, 그리고 (말 없이 앉아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이 나으리, 그리고 방금 오신 (화영을 가리킨다.) 이 나으리 순으로 돌리겠습니다! 하하!
눈 밑이 퀭한 남자: (손을 덜덜덜 떨며 주사위를 굴린다.) 5
5!!!! 5다!!! 5가 나왔다!!!!! (비명을 지른다!)
윤화영:(저 치도 어지간히 운이 안 좋은가 보군...)
말 없는 남자: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주사위를 던진다.) 에잇! 2
뭐야! 이거... 이거 사기 아냐!? 엉? (삿대질로 화영을 가리킨다.) 저놈! 저놈이 온 뒤부터 주사위가 이상해졌다고! 나는 3 밑으로는 나와본 적이 없는데!
도박장 주인: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나으리. (사람 좋게 웃으며 남자를 진정시킨다.) 저는 저분을 오늘 처음 뵙니다!
자, 이제 새로 오신 나으리가 굴려주시지요!
1
합치면 3이군.
눈 밑이 퀭한 남자: 내가!!!! 내가 1등이다!!! 하하하하하!!!!! (기쁜 듯 포효한다!) 어머님! 기다리십시오!!
도박장 주인: 하하... 아직 첫 판이 끝났을 뿐입니다! 이제 두 번째 주사위를 굴려주시지요. 이번에도, 다음에도 나으리가 제일 높은 숫자를 굴리시면 어머니를 뵐 면목이 생기시는 겁니다!
눈 밑이 퀭한 남자: 느낌이 왔느니라...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길 것 같아!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주사위를 굴린다.) 6
도박장 주인: 이번 판은 벌써 승자가 나왔군요! 하지만 다른 나으리들께서 똑같이 6을 굴리시면 한 판 더 하시는 겁니다? (눈을 찡긋거린다.)
말 없는 남자: (이번엔 자기가 손을 덜덜 떨고 있다.) 안 돼... 내가 이겨야 한다고! 나는 집을 잃어버리게 생겼어!!! 5
아악!!!! (머리를 쥐어싸맨 채 비명을 지른다!)
눈 밑이 퀭한 남자: 하하하!!! 이번 판은 내가 이긴 것 같구려!!!
도박장 주인: 오. (손톱을 물어뜯으며) 정말로 나으리께서 이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이제 마지막 판! 시작하겠습니다!
눈 밑이 퀭한 남자: (그 어느 때보다 손을 덜덜덜 떨고 있다.) 제발... 제발...! 제발!!!
5
눈 밑이 퀭한 남자: 와!!!!! 다들 보았느냐!!!! 하하하하!!!!!
말 없는 남자: 닥쳐!! 아직 안 끝났으니까!!
5
하하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도박장 주인: 열기가 아주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하하하... 마지막 나으리도 굴려 주시지요!
도박장 주인: 동점자가 나왔으니 한 판을 추가해... 이제 진짜 마지막 판! 가겠습니다! 나으리들은 주사위를 한 번씩 더 굴려주시지요!
눈 밑이 퀭한 남자: 후우... (불안한 듯 숨을 몰아쉬다가, 눈을 질끈 감고 주사위를 던진다.) 에잇! 6
눈 밑이 퀭한 남자: 내가!!!! 내가 1등이다!!!!! 하하하!!!!!!!!! (미친놈처럼 웃어재낀다.)
말 없는 남자: 닥쳐라, 이놈아! 아직 안 끝났어!!!! (미친 남자를 밀어서 넘어뜨리고는 주사위를 패대기친다.) 나도!! 6!! 1
아, 아, 안돼!!! 무효야!!! 무효라고!!!
도박장 주인: 아이고... (측은한 듯 남자를 바라본다.)
윤화영:자네가 시작할 때 3 이야길 해서 계속 3만 나오지 않나!
말 없는 남자: 뭬야? (시뻘개진 눈으로 화영을 노려보다가 어깨로 퍽! 쳐버린다.) 왜 갑자기 시비야? 엉?? 네가 3을 굴린게 내 탓이야!?
도박장 주인: 아이고, 진정하십시오 나으리! 승자가 드디어 나왔으니...
눈 밑이 퀭한 남자: (금은보화를 품에 쓸어담고 있다.) 하하!!! 난 역시 내가 해낼 줄 알았어!!!! 하하!!
윤화영:(난장판이 된 틈을 타 슬쩍 빠져나온다...!)
윤화영:
민첩
기준치: |
60/30/12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슬쩍 챙긴 패물은 다시 잘 넣는다!)
난리가 난 틈을 타, 당신은 제일 위에 얹어져있던 패물을 챙겨듭니다.
잠깐 있었을 뿐인데 당신까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윤화영:(시끄러운 곳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정신이 사납다. 반대편 행정지구로 건너간다.)
영월의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관청들이 대거 자리 잡은 행정지구입니다.
죄인들을 가두고 심문이 이루어지는 감옥도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
크게 눈여겨볼만한 것은 없겠습니다만, 예부상서가 영월에서 관직을 받았다 하니
운이 나쁘다면 그를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화영:(마주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관리인 것마냥 자연스럽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귀를 쫑긋 세워본다.)
윤화영:
듣기
기준치: |
55/27/11 |
굴림: |
58 |
판정결과: |
실패 |
지나가던 관리: 황제 폐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러다 정말 반역이라도 일어나는 것 아냐?
부채질하는 관리: 전쟁이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몸을 사리겠지. 폐하께서 군사들을 전부 수도로 다시 불러모은 지금, 황궁을 쳐봤자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지나가던 관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런데 그놈이 정말로 연 공자라고 하던가? 이 대감의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영월인도 아니고...
부채질하는 관리: 그러니 그놈들이 이렇게 설쳐대는 것 아니겠나? 생판 남이었어봐? 폐하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겠어? 연 공자가 아니어도 뭔가 있으니까 이리 하시는 게지...
윤화영:(그놈들? 잠시 딴청을 부리다가 주둔지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영월의 수도인 공명을 경비하는 경비대의 건물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훈련장으로, 서쪽은 본 건물과 숙소로 용도가 나뉘어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보통 낮에는 대로의 동쪽이 북적이며,
밤에는 서쪽에 조금 더 사람이 많으리라는 뜻이겠지요.
경비대를 목적으로 향하는 사람은 당신뿐인 것 같습니다.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윤화영:(구석에 혼자 있는 병사가 없나 자연스럽게 돌아다닌다.)
얼음 먹던 병사: (짝다리를 짚은 채 화영의 앞을 가로막는다.) 네놈은 뭐냐? 여기는 너 같은 놈들이 함부로 들어올만한 곳이 아니다. 썩 나가!
윤화영:아, 동생이 이곳에서 일하는데. 부탁받은 것이 있어 잠시 찾아왔네만...
얼음 먹던 병사: 동생?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동생놈 이름이 뭔데? 부탁받은 건 또 뭐고?
윤화영:(눈을 굴리다가) 말하면 아시오? 예 병사가 몇인데. 병사들 숙소라도 알려주시면 내가 알아서 찾아가겠소.
얼음 먹던 병사: (미친놈 보듯이 바라보다가) 썩 꺼져! (위협하려는 듯 창을 휘두른다.)
얼음 먹던 병사: (귀를 후빈다.) 그쪽이 누군데?
윤화영:이 가의 장손 이영하요. ...병부의 이 대감 모르는가!? (뻔뻔하게 화를 지른다)
윤화영:
말재주
기준치: |
45/22/9 |
굴림: |
97 |
판정결과: |
대실패 |
얼음 먹던 병사: (수도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여봐라! 여기 수상한 놈이 있다!!! 전부 이리로 모여!!!
멀리서부터 병사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얼음 먹던 병사: (화영의 팔을 붙들고는) 이 대감? 이 대가아아암? 장손은 무슨... 네놈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내가 다 알아야겠다!
이윽고 달려온 병사들이 포승줄로 당신을 꽁꽁 묶어버립니다.
얼음 먹던 병사: (화영을 힐끔 보고는) 병부로 보내둬라. 내가 재상께 아뢰겠다.
그렇게 당신은 당신이 방금 떠나왔던 행정지구로 되돌아옵니다.
당신이 도착한 곳은 병부 안에 있는 한 감옥입니다.
죄목이 심각한 죄인들을 가둬놓은 곳은 아닌 듯, 취객들도 얼핏 보입니다.
당신을 끌고 온 병사는 당신을 대충 감옥 안에 던져놓고 문을 잠급니다.
당신은 얼떨결에 지푸라기를 방석삼아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앉아있노라면,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와 투덜거리는 소리
우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따위가 들려옵니다.
윤화영:되는 일이 없군. (심장을 찌른 이래로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한번 죽음의 지척에 다녀와서인가, 감옥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태평하게 벽에 기대 눈만 꿈뻑거린다. 풀려나면 그대로 황궁으로 달려갈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간만에 생각을 멈추고 앉아있으면,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선화가 심장을 찌르던 것도, 웬 이상한 놈과 거래를 한 것도요.
등의 걱정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도화국은 잿더미가 되었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대가 다시 그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다시 '왕'이라는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발자국 소리 하나가 가까워집니다.
마주하는 것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입니다.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 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남자 하나가
선연하게 웃는 그 얼굴은 마치 이 세계의 것 같지가 않아요.
이름 없는 자:(뒷짐을 진 채, 의아한 얼굴로 화영을 바라본다.) 너는... 이곳에 있어야 할 자가 아닌 것 같은데?
윤화영:자네도 그러한 듯한데. (멀뚱히 올려다본다.)
이름 없는 자:나는 이 나라의 재상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화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선택을 종용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다지 잊힐만한 기억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름 없는 자:그래. 나를 본 적이 있느냐? (검지로 턱을 문지르며) 일개 평민이라면 나와 만났을 일이 없을 것이고 영월의 관리라면 내가 얼굴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윤화영:도화의 언덕에서 보았는데. 기억이 안 나나?
이름 없는 자:도화의 언덕? 얼마 전에 멸망한 그 나라 말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나와 닮은 자와 착각한 듯 하구나.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선화는 그대에게 돌아왔을 때 미래에서 인과를 걸어 되돌아왔다 말했죠.
그 말 대로 길을 여는 자가 그대를 보낸 이곳이
그대가 죽은 이후이며 동시에 선화가 아직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라면…
그가 그대를 처음 보는 것이 아주 괴이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죠.
그가 선화와의 약조를 이루고 그를 제게로 돌려보냈으니
그는 적어도 선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가 '재미있다.'라고 말했던 것을 그대는 여즉 기억하고 있을 테지요.
그가 만일 그 '흥미'라거나 '재미'를 그대에게 느낀다면,
윤화영:아니, 만난 적이 있다. 네가 내 무사와 어처구니없는 계약을 하여 그놈을 과거로 보내주고는, 과거의 무사와 미래의 무사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했지. 나에게 말이야! 자네가 벌일 만한 일이지?
윤화영:
설득
기준치: |
40/20/8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이름 없는 자:흠?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나는 그 무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네놈이 누군지도 모른다.
윤화영:도화의... 왕이었지. 그럴 듯해 보인다면 생각해 봐. 내가 누구를 골랐을 것 같은가?
이름 없는 자:왜 네가 내가 질문을 하는거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화영을 바라보다가) 네가 정말 도화의 왕이라면, 네가 말한 무사는 연 공자겠구나? 공자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
윤화영:공자! 하, 하하... 선화가 출세한 것은 알았으나 이리 들으니... 그래. 연 가의 선화가 아닌가.
이름 없는 자:그래. 하도 소문이 자자해 나도 흥미를 갖고 있던 참이었다. (빙그레 웃으며) 나는 너를 심문한 뒤 공자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함께 가겠느냐?
윤화영:반가운 말이다. 바로 가지. (곧장 몸을 일으키고 옷을 턴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대를 묶고 있던 포승줄이 스르르 풀립니다.
그리고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옥문이 열립니다.
이름 없는 자:(화영을 힐끔 본 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화국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데, 그대는 무엇을 원해서 돌아온 것인지? 공자와 함께 밭이라도 갈려고?
윤화영: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희 같은 족속들은 꼭 소원의 어느 부분을 이상하게 이뤄주는 취미가 있어서 말이지...
이름 없는 자:이루어지기만 하면 된 것이 아닌가?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공자와 함께 영월을 빠져나갈 생각이라면 꽤나 힘들 것이네. 지금은 뇌옥에 갇혀 있거든. 몸도 성치 못하고...
윤화영:도화도 선화도 전부 돌려내라고 했건만 둘 중 하나는 이미 없지 않은가. 이미 절반이 이뤄지지 못하게 되었는데. ...선화를 빼내는 일은 네 도움이 필요하겠다.
이름 없는 자:글쎄. 그건 나중이 되어야 알 수 있겠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황궁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황궁의 시선을 한 곳으로 돌린 뒤에 들어가거나, 내 시종이 되어 함께 들어가는 법이지.
윤화영:몸이 편한 쪽으로 하지. (적당히 재상의 시종처럼은 보이는 제 옷을 내려다본다.) 이대로 들어가면 되는가?
이름 없는 자:(고개를 끄덕인다.) 따라 오시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은 열지 말고, 고개도 들지 말고. 황궁 안에는 그대의 얼굴을 아는 이가 적지 않게 있을테니.
윤화영:숙인다고 가려질까 모르겠다만. 그러지.
사람 하나와 동행하고 있을 뿐인데 병사들도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군요.
그는 익숙한 듯 다리를 건너 궁 안으로 들어갑니다.
수많은 관리들이 그에게 아는 체를 하며 다가옵니다.
이름 없는 자:(관리들을 적당히 타일러 보내고는) 그래서, 공자를 어떻게 빼낼 생각이신지? 우리가 가는 길로는 절대 되돌아올 수 없을 터인데.
윤화영:시종을 한 명 더 두는 것은 어떤가? 머리에는 가발이라도 씌우고.
이름 없는 자:(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한 번 생각해보지.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전각의 앞에서 걸어 나오다 허리를 숙이는 이가 있습니다.
이재하:어찌 재상께서 이 뇌옥까지 친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까?
이재하가 그 곳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름 없는 자:그쪽은 오늘도 출근 도장을 찍으셨군요.
이재하:하하… 이것이 제 일이지 않겠습니까? 역도는 싹을 미리 뽑아야 하는 법이니.
이름 없는 자:그렇습니까? 허나 그대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것이 아니었다 기억하고 있는데.
이재하:그저 황제 폐하를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이름 없는 자:최선이라… 최선이라면 무엇이 말입니까? 폐하 몰래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일이요?
이재하:이 황궁에서 몰래라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하하. 게다가 괴롭히다니요! 도리를 가르친 것뿐이지요. 하늘같은 어른을 보고도 저리 뻣뻣하게 굴고 있으니 폐하의 심기가 어지럽혀진 듯 하여.
이름 없는 자:이미 그물 속에 걸려들어온 물고기인걸요. 황족도 아닌 그대가 숙부와 조카의 관계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포기를 아는 것도 사내의 미덕이라 하지요. 폐하께서도 슬슬 그를 잊어 가시는 것 같으니 이젠…
한 마디가 들려오면 바로 다음 마디가 이어집니다.
어째서인지 이야기들이 이어질수록 이 재하의 혈색이 울긋불긋해집니다.
분명 그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인 탓이겠지요.
그리고 그대 역시도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갇혀 있다는 선화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 자는 뇌옥에 출근 도장을 찍을 정도로 선화를 괴롭혀댔다는 뜻이 되지 않던가요.
이름 없는 자:…그만 관심을 돌리라는 뜻이지요. 그를 그리 만듦으로써 그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려워보인다는 말입니다. 내 그대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이 퍽 아쉬워서 그렇습니다만. (옅게 미소짓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재하는, 이어지는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관심이 없어진 것에 가깝게 보입니다.
외려 그 시선은 흥미롭다는 듯 그대를 향합니다.
눈길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훑었다가
이재하:새 종자라도 들이셨습니까? 재상께서는 늘 혼자 다니셨던 것 같은데...
이름 없는 자:내 종자를 본 적이 없습니까? 하긴, 그대와 내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
이름 없는 자:닮았다, 라… 내 종자가 누구와, 무엇이 그리 닮았습니까?
그 치가 목이 잘려 나가고, 눈조차 감지 못하는 것을 직접 이 눈 안에 담지 못하였다면 분명 저조차도 착각하였을 만큼.
대화가 이어진 이후로도 그는 그대를 한참 훑어봅니다.
그러나 그 의심이 합리적이며 진실에 가까우리라는 것까지는
뇌까리는 말들은 그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천년 같은 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옆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목소리는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 그대 귓가에 맴돌아요.
이름 없는 자:(화영을 힐끔 보고는) 이만 가지.
그는 이재하가 나온 전각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돌계단을 쭉 따라 내려가면
어둠이 눈앞을 가리고 축축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쌉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습기가 천장에 고이고 물이 되어 떨어져 내립니다.
황궁의 뇌옥은 그 죄질이 엄중하여 도저히 세상 밖에 내놓을 수 없다는 이들만 가둬 두는 곳이라
들어가면 나올 수 있는 이가 손에 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안에서 죽어 나오지 못하기에 경비조차 두지 않는다는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뇌옥 안은 바깥과 엇비슷하게 텅 비어 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는 그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한 곳의 철창 근처에서 그의 발걸음이 멈춥니다.
윤화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화려한 적포와 면관을 쓴 이가 뒷짐을 진 채 서있습니다.
길다란 은빛 머리카락을 따라 늘어지는 실 위에는 매화가 새겨진 옥구슬이
옷 위에는 금실로 수놓아진 아홉마리의 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생김새가 선화와 퍽 닮아있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겁니다.
언젠가 선화가 그대 나이 즈음이 되면 꼭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싶은…
물론 그 얼굴에 그려진 싸늘한 표정만은 그대가 선화에게서 본 적이 없는 것이겠지요.
이름 없는 자:(팔꿈치로 화영을 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한다. 그리고는 깊게 허리를 숙인다.)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연유겸:네놈이 이놈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물었다.
이름 없는 자:소인은 공자를 오늘 처음 보옵니다만…
이 대감에게 묻는 것이 옳을 성 싶습니다. 그자가 연 공자를 매일같이 찾는다는 사실을 궁 안의 쥐새끼조차 알고 있을테니.
연유겸:그놈은 자기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던데. (선화의 얼굴을 보고는 혀를 찬다.) 오랜만에 조카놈 얼굴이나 보려고 왔더니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겠구나. 얼굴이 반죽이 되었어.
이름 없는 자:(작게 미소짓는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조정이 연 공자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과 빼내려는 이들로 나뉘어져 있는걸요.
연유겸:(심드렁한 어투로) 자기가 자초한 일이지. 네가 죽겠다 난동을 피우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쯧.
그래. 어쨌든 선화야. 잘 생각해보거라. 나도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멀리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다만, 불경한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니 어쩔 수가 없구나. 언제까지고 떠돌이 개처럼 살 수는 없지 않느냐.
연선화:…어찌 나무가 새를 고르겠습니까? 저는 영월에서 살 생각이 없습니다. 형님.
연유겸:네 둥지가 틀어져있는 나무라면 어떠하냐? 어디든 황천길보다는 나을테니, 돌아갈 곳 없는 참새에겐 잿더미라도 감지덕지지.
그리고 재상.
이름 없는 자:예, 폐하.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인다.)
연유겸:(화영을 힐끔 보고는) 여기가 감옥인지 저잣거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군. 아까 그놈도 그렇고, 그대도 그렇고, 다들 목숨이 두 개쯤 되는 모양이야.
출입금지라는 말의 뜻풀이를 내가 해줘야 하나?
작게 중얼거린 황제는 그대로 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깁니다.
연유겸:재상이 시종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건 또 처음 보는군. 이놈은 친척이라도 되는가?
이름 없는 자:아무래도 홀로 다니려니 불편해서, 얼마 전에 들인 종자입니다.
연유겸:갑자기 황궁 다니기가 불편해졌다? (피식 웃고는) 네놈은 이름이 무엇이냐?
윤화영:(여전히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다.) ...유정이옵니다.
연유겸:유 씨인가? (관심이 떨어진 듯 다시 몸을 돌린다.) 알겠다.
그리 대꾸하고는, 황제가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가 계단을 올라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이름 없는 자가 입을 엽니다.
이름 없는 자:폐하가 그대의 얼굴을 몰라서 다행이군. 진짜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체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화영:모르겠지. 나는 마주친 기억이 없으니.
이름 없는 자:그래. (앞쪽의 철창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가 보시게.
윤화영:(굽어 있던 허리를 펴고 철창 앞으로 간다. 그대로 잠시 서서 안쪽을 내려다본다.)
사람이라기보단 그저 호흡하고 있는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이재하의 말로 미루어 분명 좋은 취급은 아닐 것이라 예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겠죠.
늘어졌던 인영이 겨우 시선을 들어 이쪽을 향합니다.
화상 자욱으로 잔뜩 엉망이 된 얼굴 안에 새겨진 푸른 눈동자가 그대를 응시합니다.
그 시선이 한참동안이나 몇 번이고 깜박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기대였음을 스스로도 잘 아는.
연선화:…전하를 뵈었으니 분명 이곳은 꿈 속이로군요. 왜 오늘따라 이리 손님이 많은가, 했습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낮고, 온통 갈라져 있어요.
윤화영:바보같은 소리 말거라. (허리를 숙이고 손짓으로 선화를 부른다.) 가까이 오거라.
연선화:(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늘은 더 움직이기가 싫습니다. 전하가 오십시오.
윤화영:어허? 방자하게 굴지 말고 이리 오거라. 상처를 좀 봐야겠다.
연선화:...정말로 몸이 아픕니다. 전하는 다친 곳도 없으시면서 왜 다친 사람을 이리저리 오라가라 하십니까? (말을 꺼내다보니 서려움이 밀려온다. ㅡ아마 꿈 속이라 그런 것일 테지만ㅡ 화영이 정말로 멀쩡해보였던 탓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몸을 벽 쪽으로 놀려 뉘인다.)
윤화영:(아직도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퍽 이해가 가면서도 우스워 웃음을 터뜨린다. 그도 이곳에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마.
연선화:(고민하는 듯, 한참 동안이나 웅크린 채로 돌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자세를 바꾸니 또 새로운 부위에 통증이 찾아왔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겨우 몸을 철창 쪽으로 옮긴다. 팔로 걷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목을 달고 오셨으니 봐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무엇을 피하고자 하는 것인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입니다.
윤화영:(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마구 엉키고 더러워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풀어준다. 이리 보니 외눈박이 쪽 선화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다. 혀를 차며 상처가 적은 쪽 뺨을 쓸어준다.) 그 미친놈이 널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놨구나. 왜 맞고만 있었느냐?
연선화:(그의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더욱 푹 숙이고 만다.) 반항해봤자 더욱 모진 고문만 돌아올 뿐이니까요. 예부상서는 쪽수도 많고요. 이곳엔 전하처럼 절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안전한 길입니다.
윤화영:쯧. (턱을 잡아 고개를 더 숙이지 못하게 한다. 손등으로 눈물을 대강 닦아주고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철창 좀 어떻게 해봐. 불편하군.
이름 없는 자:공자는 나갈 생각도 딱히 없어 보이는데?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그대가 들어가는 건 어떠한가?
이름 없는 자:(선화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나오고 싶습니까, 공자?
연선화:(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화영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다시 병사들에게 쫓기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깰 꿈이라면, 그때까지 전하와 시간을 더 보내겠습니다.
윤화영:좋은 꿈이라서 병사들 같은 건 안 쫓아온다. (선화의 양 볼을 꾹 잡는다.) 나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무인답게 일어나거라.
윤화영:
설득
기준치: |
40/20/8 |
굴림: |
54 |
판정결과: |
실패 |
윤화영:
외모
기준치: |
70/35/14 |
굴림: |
3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연선화:(화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옆으로 시선을 피한다.) ...알겠사옵니다.
윤화영:(남자에게 빨리 안 열고 뭐하냐는 듯 시선을 보낸다.)
이름 없는 자:그대는 참을성이 없는가? (한숨을 내쉬고는 허공에 작게 손짓한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자물쇠가 삐걱이며 떨어져 내립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선화가 벽에 손을 짚은 채로 몸을 일으킵니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요?
인상을 찡그린 채로 일어나던 그가 그대로 픽 쓰러지고 맙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이름 없는 자:저 몸으로 멀쩡히 걸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 (팔짱을 낀다.) 공자를 종자랍시고 데리고 나갔다가는 내 목도 떨어지고 말 걸세.
윤화영:목이 떨어져봤자 붙이면 그만 아닌가. 이놈을 걷게 할 순 없나?
이름 없는 자:하하... (웃기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그런 방법은 없어. 그러니 그대가 업고 나오든, 끌어 안고 나오든, 버려두고 나오든 해야지.
그러면 내가 숨겨진 통로를 알려줄 수는 있어.
윤화영:(화색이 돈다.) 어디에서 어디로 통하지?
이름 없는 자:잊은 이들이 많지만, 감옥 밑에도 물은 흐르지. 수로를 이용하면 황궁 바깥까지 빠져나갈 수 있네.
윤화영:성가시지만... 그 편이 낫겠군. (바닥에 늘어진 선화를 내려다보다가 업히라는 듯 허리를 굽힌다.) 안내해주게.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그대의 등을 바라보던 선화는
이렇게 몸이 가벼웠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뇌옥의 길은 더욱 깊은 안쪽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따금씩 쥐 몇 마리가 찍찍 소리를 내며 그대의 발 위로 지나갑니다.
채 마르지 않은 피가 묻은 쇠사슬과 아직까지 불씨가 남아있는 화로와 인두,
마치 비 내리는 날처럼, 습지가 더욱 짙어집니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원형의 거대한 철문이 있는 길의 끝.
윤화영:앞장서. (선화를 업은 채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킨다.)
이름 없는 자:(어깨를 으쓱이고는 수로 밑으로 훌쩍 뛰어내려간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게.
윤화영:(선화를 바닥에 내려두고 먼저 내려간다. 내려와 위쪽으로 두 팔을 뻗는다.)
그대가 손을 뻗으면, 선화가 겨우 몸을 움직입니다.
연선화:
건강
기준치: |
10/5/2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건강
기준치: |
50/25/10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겨우 몸을 일으켜보면, 시체같은 몰골이 더욱 시체같이 변해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혀를 차고는) 수레라도 끌고올 걸 그랬군.
윤화영:1 1첫번째갈림길에서꺾는다 2갈림길이나와도직진한다
(쉽지않군...)
물이 발목까지만 오는 탓에, 선화를 업고 있음에도 움직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수로에 이렇게 물이 없다니... 가뭄이라도 든 걸까요?
그렇게 한참을 걷던 그대는 발 밑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윤화영:(눈동자만 내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윤화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 그것이 [낡은 단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윤화영:이봐, 재상. (멈춰서서 발밑을 툭툭 친다.) 이것 좀 주워주실 수 없는가?
이름 없는 자:(떨어진 물건을 주워들고는) 너무 낡아 보이는데? 녹이 다 슬었어.
그대가 칼을 갈 줄 안다면 쓸만해지겠지만... 왕이 그런 것을 다 배웠는가?
연선화:(화영의 등에서 중얼거린다.) ...전하께서 검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갈아드리겠습니다.
윤화영:쑤셔넣을 용도라면, 녹슨 것이 오히려 낫다네. 상처에 고름이 심하게 남거든... 음? (허공에 몇 번 털어 소매에 챙기려다) 네가 칼에 갈릴 것 같으니 관두거라.
연선화:(괜히 화영의 어깨에 이마를 박는다.) 전하께서는 저를 너무 물로 보시는 것 아닙니까?
윤화영:건방진 걸 보니 건강한 것 같아 기분이 좋구나. (오른쪽으로 꺾어 쭉 걸어간다. 2 1-3까지 2-7까지)
연선화:저도 전하께서 빈정대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다가 배 안쪽이 아파와 웃음을 그친다.)
걷는 동안에도 돌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들, 주인을 잃은 물건 등이
그렇게 수로의 중간 즈음에 다다랐을 무렵, 그대는 흰색의 [부싯돌] 하나를 발견합니다.
윤화영:(...조약돌인가? 갸웃거리며 왼쪽으로 꺾어 9까지 간다)
누군가가 그대 일행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자빠집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팔다리를 전부 걷어 붙이고 있습니다.
(화영과 이름 없는 자의 옷차림을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어이쿠, 나으리들!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요? 하하... 한 푼만 주십쇼! 딱 한 푼! 만 주신다면 제가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 해드립죠... 하하... (어느새 양손을 모으고 있다.)
윤화영:그거 반가운 말이군. (아까 거슬러받았던 동전을 꺼내 던져준다.)
거지: (동전을 받고는 화색이 된다.) 어이쿠! 역시 나으리라 그런지 통도 크십니다요! 하하... 이리 따라오시죠!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서기 시작합니다.
그대는 가는 길에 떨어져있는 [두루마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고급스러운 재질입니다.
제대로 된 옷을 구하기 전까지 선화에게 입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피에 떡칠이 된 꼴로 나갔다가는, 모두의 시선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연선화:싫습니다... (내리지 않겠다는 듯 양 다리를 화영의 허리에 더 꽉 감아버린다.) 전하와 떨어지기 싫어요. ...아까도 전하가 절 버리고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요.
윤화영:(조카에게조차 받아본 적 없는 앙탈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의젓하게 내리거라. 어서.
이름 없는 자:(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가) 그걸 그대가 뒤집어 쓰는 건 어떤가? 가려지는 건 똑같을 것 같은데.
윤화영:그럼 자네가 좀 주워서 이놈 등에 덮어주시게.
이름 없는 자: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두루마기를 집어들어 대강 선화가 안 보이도록 덮는다.)
물을 머금은 두루마기는 무거워서, 마치 짐을 하나 더 얹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거지: ...이, 이제 다시 가도 되는 것이겠지요, 나으리들?
길의 끝에는 그대가 열고 지나왔던 것과 같은 수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을 밀어 열고 나서면, 어두운 골목길이 등장합니다.
그림에 그린 것처럼 단장되어 있었던 공명과는 희미하게 다릅니다.
건물의 외관은 낡았고 골목은 정비되어 있지 않으며
길거리를, 건물 안을 밝히는 불빛조차 몇 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 소리, 웃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 공간은
마치 공명 전체에서 유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거지: 이곳은 관리구역이라 병사들이 많이 없습죠... 하하. (화영과 이름 없는 자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으리들! 집에 잘 들어가시고요!
그렇게 말한 거지는 후다닥 어디론가 향합니다.
이름 없는 자:부탁받은 것을 건네줄 때가 되었군.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화영에게 건넨다.) 연 공자에게 전달하라 받은 것이지만,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어.
받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특하게 세공된 패입니다.
상하지 않도록 기름을 먹이고 여러 겹 덧칠을 해 만든 물건인 것 같아요.
이름 없는 자:기루의 물건일세. 이제는 이 수도 안에 없는 것이라 들었지만... 아직 지니고 있던 이가 남아있더군.
이 패를 기루에 보이면 머물 곳을 안내받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이 수도 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겠지. 기루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물건이니.
윤화영:역적처럼 숨어 지낼 수야 없지. 이걸로 도움을 얻어 도성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겠는가? 어찌 생각하나.
이름 없는 자:(어깨를 으쓱인다) 그거야 그대와 공자가 알아서 쓸 일이지. 이 패를 내게 건네준 자는 기루의 주인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던 모양이니, 그대가 무엇을 하려 하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걸세.
윤화영:그러한가. (패를 받아들어 소매에 넣고 짧게 눈인사한다.) 이리 대가없는 도움을 주니 어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름 없는 자:굳이 감사를 하자면 이 세상에 없는 연 공자의 부친에게 드리는 게 좋을 듯 한데. (작게 웃고는) 살아생전 덕을 많이 쌓은 모양인지, 죽은지 수 년이 지난 후에도 이렇게 은혜입은 이가 나타나니 말이야.
윤화영:(눈썹을 들어올리고는 몸을 돌린다.) 다시 만날 일이 없길 바라네.
이름 없는 자:기루까지 가는 길은 알고? 앞까지 데려다 줄테니 너무 서두르지는 말게나. 내가 부탁받은 건 연 공자가 기루에 무사히 들어가는 걸 보는 것까지니까.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던 그가 이내 발걸음을 옮깁니다.
차가운 달빛 아래로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집니다.
이름 없는 자:이곳은 관리구역일세. 낮에 와보면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곳은 도화국 국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말이야...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윤화영:아는 얼굴이 있을 리가. (웃으며 지나친다.)
이름 없는 자:그대가 아는 이들은 다 죽은 모양이지.
윤화영:글쎄. 하나는 남았으니... (선화를 고쳐 업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한 밤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지나간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선화와도 도화의 저잣거리를 이리 걸었었지요.
그대는 오늘도 선화와 함께 도화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선화가 이런 일 당할 일도, 그대가 이리 신분을 숨기고 살아갈 필요도 없었을 터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거리를 걷다보면, 오늘따라 별이 더욱 밝아 보입니다.
하늘로 시선을 두면 어째서인지 유독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쌍어궁이 그대의 시선을 잡아 끕니다.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또다른 선화가 시퍼런 칼날로 자신을 찌르던 그 날에도
이리 아름다운 쌍어궁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이는 타오르는 재앙을 도화에 내리게 했던 바로 그 주문입니다.
생각은 멈출 곳을 모르고 끝없이 뻗어나갑니다.
한없이 뻗어나가던 그 생각은 곧 어쩌면 도화가 받았던 것 그대로,
이 영월에도 그 불꽃을 내리게 할 수 있으리라는 데까지 닿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가 길을 여는 자와 맺었던 맹약이기도 했지요.
그대가 원하는 것들을 제 자리로 되돌려 주겠다는...
무심결에 닿은 잔인한 생각에 흠칫 놀랐던가요,
예전이라면 이 거대한 제국을 멸망시키리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의 그대는 평화로운 도화국의 군주였으니까요.
그대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 가운데 온전히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던가요.
이곳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을 돌이켜 봅니다.
업신여겨지던 그대의 백성들과 그저 평화롭기만 한 영월의 풍경,
만신창이가 된 선화와 이제 다시는 쥘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도화의 그 모든 것들을요.
복사꽃이 만연하던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잿더미에서 어찌 다시 꽃이 피어날 수 있겠어요?
외려 그대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의미를 두어 남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비록 온전치 않을지 몰라도 그대에게 남은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 거대한 눈동자가 문득 눈앞에 떠오른 것도 같습니다.
이름 없는 자는 말없이 그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는 몇 번이고 다시 돌이켜 생각할 순간이 될 것이라고.
어느것도 확답할 수 없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내는 하나를 택해야만 합니다.
윤화영:(불을 내고 달아나기에는 등에 지고 있는 짐짝이 너무 무겁고, 물을 먹은 옷이 늘어져 계속해서 춥고 지치게 한다. 쌍어궁을 올려다보며 그대로 재상을 따라 걷는다.) 이 패가 내게 큰 도움을 주면 좋겠군.
다시 이름 없는 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도화의 것보다 몇 배는 거대한 규모의 기루에 당도합니다.
그리고 섬세하게 세공된 등이 잔뜩 달려있는 곳입니다.
험악한 인상의 경비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경비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패를 보여주시게나.
윤화영:(패를 꺼내 보여준다.) 그런데 자네는 나를 왜 돕는 것인가?
이름 없는 자: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탁을 받았다고.
내가 돕는건 자네가 아니라 연 공자일세. (옅게 미소지으며)
윤화영:부탁을 중시하는 도인인 줄은 몰랐는데.
이름 없는 자:그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름 없는 자:아들을 맡기다니? (의아한 듯 화영을 바라보다가) 아. 하하... 내게 부탁을 한 건 연 공자의 아비가 아닐세. 연 공자의 아비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이가 있는데, 그자가 연 공자를 도우려 하는게지. 이 이상의 도움은 못 되겠지만.
윤화영:그런가. (끄덕이다가 돌아본다.) 나도 덕을 좀 쌓아야겠군. 마침 오늘 밤 쌓을 수 있는 덕이 있어 다행이야. 안내해주어 고맙네.
이름 없는 자:그대가 이곳에서 쌓을 수 있는 공덕이 무어가 있다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그럼 편안한 밤 보내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관청으로 오게나. 어쩌면 그대를 또 도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 말을 남긴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마치 지금껏 귀신과 대화를 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리고 때마침 기루 안쪽에서 경비와 시종 몇 명이 달려나옵니다.
그들은 주위를 살피며 그대와 선화를 어딘가로 안내합니다.
미로같은 기루를 오르고 또 오르고, 몇 번이고 앞에 선 사람이 바뀝니다.
한참을 이동한 끝에 그대는 어느 호화로운 내실로 안내받습니다.
말없이 그대를 이끌던 종업원이 그제야 입을 엽니다.
종업원: 혹시라도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벽에 있는 종을 울리시면 됩니다. 아무도 나으리를 찾지 못할 테니 푹 쉬십시오.
그리 말한 종업원은 다른 시종들과 함께 간단한 이부자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깊숙이 숙인 후,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섭니다.
선화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다시 잠에 빠져든 모양입니다.
여전히 그대의 존재를 꿈이라 여기고 있을까요?
진짜 '꿈' 속에서도 그대를 만나 영월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까요?
하지만 내일이 되면 오늘 있었던 일이 전부 현실이며
그대가 정말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죠.
윤화영:(다친 몸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잠시 쓸어준다. 밝은 곳에서 찬찬히 뜯어보니 꼴이 가관이었다. 잘난 얼굴을 감히 이리 만들다니. 편히 잘 수 있게 머리 밑으로 베개를 넣어주고는 잘 준비를 한다.)
그래도 영월을 떠난 뒤, 혹은 길을 여는 자와의 약조를 지켜 당신의 것을 되찾고 난 뒤에는
하루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마치 당신이 겪었던 그 일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내실을 담당하는 종자의 말에 따르면 뇌옥에서 중한 죄인이 없어졌다고 해요.
조정이 혼란스러운 와중 일어난 일이니만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뒤숭숭한데
사라진 이가 도화왕의 호위무사라 하여 더욱 난리입니다.
누군가에 제보에 따르면 영월의 재상이 뇌옥으로 발길을 옮겼다고 하여
관리 구역의 이들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엄중한 조사를 받고
다행인 것은 당신이 도화국의 백성과 접촉한 일이 없으며
이 나라의 재상이라는 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인 걸까요?
그가 순순히 잡힐 리 없으니 당신의 존재는 여전히 비밀에 부쳐지겠지요.
이재하, 그가 종자로 위장하고 있던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가요.
사람의 입은 가볍고, 하루 이틀 사이에도 소문은 천리를 달려 나가니까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은 깊어져갑니다.
뒤숭숭한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뒤에서 인기척이 들립니다.
여전히 정신은 다른 곳으로 가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연선화:(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화영의 팔을 덥석 잡는다. 손목이며 팔뚝을 몇 번이고 주물럭거리는가 싶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말로 죽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온 것은 아닌가? 사실 전하께 숨겨진 동생이 있었나? 등의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전하?
윤화영:그래. 아주 얼굴도 만져보지 그러느냐?
연선화:만져봐도 되옵니까? (그리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진다.) 전하는 분명 돌아가셨는데... 어찌 이리 살아계십니까? 귀신이십니까?
윤화영:치성을 좀 올렸더니 이곳으로 보내주더구나. 이곳으로 보내달라 빈 적은 없지만... (만지는 손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기왕 이리 만났으니, 어서 회복하고 이 나라를 빠져나가야겠다.
연선화:(화영이 저지하지 않으면, 떡 주무르듯 볼을 이리저리 눌러본다. 그러던 중 갈비뼈 쪽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려본다. 아프다! 그제야 자신의 몸을 살펴보면 공간만 바뀌었을 뿐, 시체같은 꼴은 여전했다.) 꿈에서라도 전하를 보면 바로 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일이 일어나니 너무 놀라서 눈물도 안 나옵니다...
윤화영:아껴두거라. 우선 몸부터 씻어야겠구나. (벽에 달린 종을 울린다.) 이곳까지 어찌 왔는지 기억하느냐? 네 아비가 베푼 덕으로 이곳에 연이 생겼다 하더구나. 네가 영월에 핏줄을 두고 있었을 줄이야.
연선화:잘 기억이 안납니다. 감옥에서 전하를 뵌 것 같긴 한데... 전하가 절 업어주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전부 꿈에서 일어난 일 같사옵니다. (괜히 뒷목을 긁적인다.) 그런데 전하는 정말 어떻게 살아나신 겁니까?
그대가 종을 울리면, 곧 검붉은 옷을 입은 시종이 들어옵니다.
윤화영:음. (어떻게 말을 시작할지 생각하던 중 마침 시종이 들어와 고개를 돌린다.) 이 녀석을 좀 씻기고 옷도 입히고 싶은데.
시종: 예. 저희가 목욕을 돕겠습니다. 나으리께서는 필요한 것이 없으신지요?
윤화영:흠. 나도 새 옷을 한 벌 주면 좋겠군.
이윽고 몇 명의 시종이 들어와 선화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합니다.
당신의 눈치를 보다가 순순히 그들의 부축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종은 곧 그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색의 옷 두 벌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시종: (옷을 화영의 앞에 내려놓으며) 이곳도 계속 안전하지는 못할 듯 합니다. 폐하께서 도성 밖으로 향하는 성문을 막고, 모든 건물을 수색하라 하셨습니다.
윤화영:근래에 도성 밖으로 나갈 상인단은 없는가? 언제까지 틀어막을 순 없을 터인데.
시종: 폐하께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는 모든 이들의 출입을 금지한다 하셨습니다. 그들도 폐하의 성정을 알고 있으니 지금은 몸을 사리고 있는 추세이고요. 대신들 몇이 반기를 들었다고 듣기는 했사오나, 기루도 손님이 끊겨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윤화영:그러한가. ...혹시 재상과 연이 있나? 그를 불러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시종: 연통을 넣어드릴까요? 경비대가 쫓고 있다 들었어서 집에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윤화영:그거 좋지. 발에 날개가 달린 자이니 연통 하나면 될 걸세. 부탁하지.
시종이 들어올 때와 같은 걸음으로 방을 나섭니다.
그러고보니 재상이라는 그놈은, 당신과 헤어질 때도 연기처럼 사라졌었죠.
그러니 어쩌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날 지도 모르겠어요.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1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렇게 시종을 내보내고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한층 말끔해진 선화가 종업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로 돌아왔군요.
당신이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한 모습입니다.
연선화:(온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화영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전하가 또 사라지실까봐 불안해 죽겠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어요.
윤화영:안 사라지니 저 이불로 머리나 말리거라. 용케 옷은 입고 나왔구나.
연선화:전하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일 수는 없지요. (괜히 옷매무새를 만지며 화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몇 번을 보아도 기분이 이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전하.
...그래서, 정말 어떻게 되살아나신 겁니까? (잠시간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윤화영: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말하기가 길다. 재상에게 연통을 넣어두라 했는데, 그에게 물어보거라. 곧 올 테니.
연선화:예에? 재상이요? 어떤 재상을 말씀하시는 겁니가?
연선화:병부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영을 바라본다.) 전하께서 영월의 재상과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연선화:(점점 말이 짧아지는 것은 착각일까? 어쩌면 자신이 너무 꼬치꼬치 캐물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화영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는데...) ...그럼 저는 옆 방으로 가 있을까요?
윤화영:아니? 너는 내 옆에서 수행해야지 않겠느냐. 옆방에 뒀다간 한 다경에 세 번씩 잘 살아 있나 문을 열 듯하니... 머리나 말리거라.
연선화:...알겠사옵니다. (정곡을 찔려버린 기분이었다! 시종이 머리에 얹어준 천으로 물기를 쭉쭉 짜낸다.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앉아있다가) ...그럼 또 떠나지는 않으실 것이지요? 일주일만 있다가 저승으로 돌아가셔야 한다거나... 49제가 끝나면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윤화영:걱정 놓아라. (울상인 미간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재상은 언제나 오려는고...
연선화:또 사라지시면 저도 따라서 콱 죽어버릴 것이옵니다. (투덜대며 다시 물기를 짜낸다.)
기루 밖에서는 병사들이 여전히 도성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인지
문 바깥에서 시종이 고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웃는 낯의 남자가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름 없는 자:(천천히 걸음을 옮겨 화영의 앞에 멈춰선다. 화영을 내려다보며 미소짓는다.) 그래서, 그대는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는지?
윤화영:도움이 필요해 불렀지. 도성 밖으로 나갈 방도가 정말 없겠는가?
그대를 이곳으로 보낸 자에게 묻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가 누구인지 아나 보군.
이름 없는 자:확신할 수는 없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지. 그자가 이름은 말해주지 않던가?
길이야 만들려면 만들 수 있겠으나 알다시피 나는 이 나라의 재상인지라, 그대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윤화영:(웃음을 터뜨린다) 이 땅덩어리가 자네에게 무엇이라고. 이름은... 없는 것 같았다. 길을 여는 자라 칭하기는 하였다만.
이름 없는 자:원수의 도움을 받다니, 그대도 참 급했던 모양이야. (따라 웃고는) 그자가 호의로 그대를 이곳까지 보내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놈에게 무엇을 주고 도 무엇을 받기로 했지?
윤화영:따지자면 자네도 내 원수라네. 원흉이지... 흥. (선화를 한번 흘끗 쳐다보고는) 이곳으로 보내줄 테니 이 나라에 불로 재앙을 내리라더군.
이름 없는 자:응?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했다고. ...그럼 그놈과의 약조를 지키면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그놈만 좋을대로 계약을 맺지는 않았을 테니.
윤화영:무슨 주문을 외라 하였는데, 그것이 내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고 하더군. 자네가 없는 사이 우리가 약조를 하여서, 이제 내가 죽으면 이 놈도 죽게 생겼으니...이 녀석을 돕는 셈 치고 나를 도와주면 좋겠는데. 응?
이름 없는 자:내가 일전에 연 공자를 도운 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대는 내게 줄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군.
그래서, 그대 목숨이 걱정인가? 불덩이에 맞아 죽는 게 무서워서?
윤화영:내 원을 이루어봤자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자네는 무얼 주면 날 도와줄 텐가? 금은보화 따위를 원하진 않을 테고.
이름 없는 자:나는 그대 이야기가 궁금한데... 왜 내가 그대의 원수인지, 그대가 어쩌다가 그자와 계약을 맺게 되었는지 말이야.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대와 공자의 목숨 정도는 보전하도록 도와주지.
윤화영:그 정도야! (선화를 보며) 시작은 이 놈이 먼저였다. 네가 선화와 거래를 했어. 시간을 되돌리는 칼과 이 놈의 명줄을.
엊그제 있었던 일임에도 수 년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대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일까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가뜩이나 없던 선화의 말수가 적어집니다.
재상은 꽤나 흥미로운 낯으로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이름 없는 자:(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공자와 미래의 공자를 선택하라고 해서 화가 난 거군? 감옥에서 날 아는 체 했던 것도 이미 나를 본 전적이 있기 때문이고.
연선화:전하... (말없이 화영을 바라본다. 자신이었다면 분명 누군가의 따듯한 말을 바랐을 것 같아서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화영이 말한 사건들은, 오로지 그의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들이기에. 괜히 눈가가 촉촉해진다.) ...앞으로는 제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름 없는 자:(선화를 힐끔 보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공자는 짐덩어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습니다만.
윤화영:(입을 열었다가 재상의 말에 끄덕이며 입을 닫는다.)
이름 없는 자:하하... 그대가 그대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나도 그대가 원하는 것을 주겠네.
그렇게 말한 재상은 품 속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내듭니다.
이름 없는 자:(받으라는 듯, 화영에게 병을 건넨다.)
이름 없는 자:그놈이 원하는 주문이야 뻔하지. 그렇게 먹고도 아직고 배가 고프다고 하던가?
이름 없는 자:주문을 외우기 전에 공자와 그걸 나눠마시게. 그럼 그대들이 불덩어리에 맞아 단명하는 일은 없을테니.
목숨이 아까워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던 것 아닌가?
윤화영:호오. (품속에 호리병을 챙긴다.) 고맙네. 입아프게 늘어놓은 보람이 있군.
이름 없는 자:공명의 서쪽으로 가면 높은 언덕이 있어. 그곳에 높은 제단이 있으니 그곳에서 놈을 부르는 게 나을 거야.
그렇게 말한 재상은 돌아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름 없는 자:다시 만날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군. (화영과 선화를 한 번씩 보고는) ...그럼 만수무강 하십시오, 전하.
그대 손에 쥐여진 도자기 병이 괜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문득 방 안을 둘러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깨닫습니다.
선화와 함께 수도 바깥으로 나갈 길은 요원하고
길을 여는 자가 걸어놓은 주박은 그대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는 목숨이 아까워 망설였다고 하나...
뜻하지 않은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방도까지 얻어냈군요.
기루 바깥에서 들려오는 영월 백성들의 목소리가 그대 귓가를 간지럽힙니다.
이들은 언제까지나 평온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을 텝니다.
비록 그대의 백성들은 안온한 일상을 빼앗겨 버렸지만...
연선화:(화영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다.) ...전하. 영월을 멸망시킬 생각이시옵니까?
윤화영:그래. (창 옆에 비스듬이 서서 언덕까지 가는 길을 가늠한다. 창밖을 내다보다 돌아선다.) 그들이 가벼운 목숨으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나. 사람의 일에 놀아나고, 높은 분들의 장난에 놀아나 자는새 불타 죽겠지. 운이 좋다면 누군가는 나와 너처럼 화를 피하겠지만... (뒷말을 흐리며 고갯짓한다.) 나가자꾸나. 이제 혼자 걸을 수 있겠느냐?
연선화:
건강
기준치: |
10/5/2 |
굴림: |
98 |
판정결과: |
대실패 |
아!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절로 주저앉는다. 풀죽은 모습으로 무릎을 두드리다가, 다시 이불 위로 기어 올라간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하가 가시는 길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윤화영:아픈 곳을 왜 두드리느냐. (혀를 차며 호리병을 꺼내 건넨다.) 그럼 마시고 이곳에서 기다리거라.
연선화:(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화영을 올려다본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자신보다 길고 그가 이겨낸 풍파가 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탐탁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혼자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윤화영:(웃음을 터뜨린다.) 혼자 갈 수 있겠느냐고?
한번 손을 잡고 일어나보거라. 천천히.
연선화: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전에도 병사들에게 잡혀가신 듯 하여...
(화영의 손을 붙들고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킨다. 제발, 제발... 누구에게 비는 것인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되뇌인다.)
정신
기준치: |
50/25/10 |
굴림: |
74 |
판정결과: |
실패 |
정신
기준치: |
50/25/10 |
굴림: |
54 |
판정결과: |
실패 |
정신
기준치: |
50/25/10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윤화영:
근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연선화:
정신
기준치: |
50/25/10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윤화영:(읏차! 일으키는 순간 선화가 무 뽑히듯 쑥 올라온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때 즈음, 화영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킨다. 한 번 발을 딛고 나니 생각한 것 보다는 움직일 만 했다. 구겨진 옷자락을 툭툭 털고는 방 한구석에 버려져 있던 단검을 챙겨든다.) 그럼 가보실까요, 전하?
윤화영:옳지. (손바닥으로 선화의 머리를 꾹 누르고 문 밖으로 나선다.)
연선화:으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저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내지른다. 새삼스레 그가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나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만 같다. 화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방을 나서면, 시종들이 배웅하듯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입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이제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에요.
절뚝이는 선화와 함께, 그대는 그림자 언덕으로 향합니다.
멀끔한 옷차림의 사내 둘을 신경쓰는 이들은 없습니다.
선화는 걷는 속도를 늦춰 최대한 자연스럽게 걷습니다.
도화국의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도망친 호위무사가 황제를 암살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소란 속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섞여 있습니다.
도화국의 백성들은 차라리 뇌옥에 갇혀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청들이 모여있는 구역과 언덕이 맞닿아 있는 까닭인 듯 싶어요.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연선화: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53 |
판정결과: |
실패 |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니, 발을 절뚝이는 선화를 눈여겨 보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큰 도시에 다리를 다친 사람이 한둘은 아니겠지요.
그들은 곧 시선을 거두고 어디론가로 향합니다.
그렇게 조금을 더 걸어, 그대는 드디어 언덕의 초입에 다다릅니다.
언덕의 꼭대기에는 [낡은 제단]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공명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횃불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윤화영: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연선화: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부싯돌을 하나 찾아낸다.) 전하. 불을 켤까요? 어두워서 호랑이가 나올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윤화영:호랑이라니. (됐다고 손을 내저으려다가, 어차피 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는 제단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나뭇가지에 불을 좀 붙이고 있거라.
연선화:예. 알겠습니다. (제단 끄트머리에 앉아 부싯돌을 이리저리 비벼본다. 앉을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윤화영:(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단을 살핀다.)
윤화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제단 뒤편에는 45척 가량 되는 높은 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 옛적엔 소수의 황제들이 자신의 과업을 보고하기 위해
그러나 도시가 한 번 화마에 휩싸인 후, 황제는 황궁 안에 새로운 제단을 세우고
길을 여는 자는 그대가 공명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그를 부르길 바랐으니
그렇게 제단과 석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단 한쪽에서 작은 환호성이 터져나옵니다.
연선화:전하! 불이 피워졌습니다.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횃불을 건넨다.)
전하는 불을 피울 줄 모르시지요? 역시 따라오길 잘한 것 같사옵니다.
윤화영:무엄한지고. (횃불을 피해 선화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고는 호리병을 건넨다.) 이제 이걸 마시거라.
연선화:아야... (아픈 듯 몸을 움츠린 채 머리를 문지른다.) 저는 어제까지만 해도 고문 당하던 몸입니다, 전하. (그러나 곧 다시 웃음을 띠고는, 화영이 건넨 호리병을 받아들어 안에 든 것은 두어모금 마신다.) 으... 너무 씁니다. 한약 같아요.
윤화영:그래? (받아들어 남은 걸 전부 마시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약은 무슨. 이제... 너는 밑에 있거라. 앉아 있어도 된다.
연선화:(제단에서 내려가 풀밭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제단에 등을 기댄 채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윤화영:순순히 따르니 좋구나. 기왕이면 네 발만 보고 있거라. (선화를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제단 위로 올라간다. 횃불 쥔 손을 위로 높이 들고, 그대로 타오르는 재앙을 불러내는 주문을 왼다. 주문을 외며 손으로는 문양을 그린다.)
그것은 어찐지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대지를 향해 내리꽂히지도 않으니까요.
언젠가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가 그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름 없는 자가 준 물약 덕분인지 기이하게도 그 불꽃은,
약간의 따스함만 느껴질 뿐, 그대에게 위협적으로 굴지 않아요.
아수라장이 된 도시 곳곳으로 병사들이 달려나갑니다.
떨어져 내리는 불꽃은 그대가 이행해야 할 계약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느 날의 악몽이 그대의 발 밑에서 재현되고 있던
이 언덕에서 살아있는 것은 그대와 선화, 오직 둘 뿐.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계약을 무를 수가 있던가요?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한 것인지, 선화가 걱정스러운 듯 그대를 바라봅니다.
누군가의, 아주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뒤를 돌아서면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재하, 그가 보입니다.
기뻐하는... 그리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르는 듯한, 그런 미소가요.
즐거움인지 탐욕인지 모를 것이 그의 눈 안에서 일렁입니다.
이재하:(선화를 힐끔 보고는 화영을 향해 다가간다.) 허깨비를 봤나 했는데, 귀신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리신 겁니까? 전하.
윤화영:(그를 발견한 눈이 기쁨으로 빛난다. 횃불을 풀밭에 내던지고 두 팔을 벌리며 그에게 걸어간다.) 마침 잘 왔네! 딱 좋은 때에 왔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재하:(화영에게 칼을 겨누며)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전하. 안 그래도 공적이 필요하던 참이었답니다... 하하... 살아돌아온 도화국의 왕에 도망친 죄인까지 잡다니, 여전히 하늘은 제 편인 듯 싶습니다!
윤화영:그래? 나도 마침 그러하네! (즐거운 듯 웃으며 단검을 꺼내든다. 그리고 곧바로 달려들며 휘두른다.)
이재하:
민첩
기준치: |
60/30/12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윤화영:
민첩
기준치: |
60/30/12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도검(중형)
기준치: |
50/25/10 |
굴림: |
1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5 |
윤화영:
회피
기준치: |
30/15/6 |
굴림: |
34 |
판정결과: |
실패 |
윤화영:(목 옆을 길게 베이고 쿨럭거리며 물러난다. 광인처럼 소리내 웃으며 달려들어 단검을 휘두른다.)
귀회지도
기준치: |
35/17/7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피해: |
1 |
이재하:
회피
기준치: |
30/15/6 |
굴림: |
58 |
판정결과: |
실패 |
그대의 검이 이재하의 어깨를 스치고 들어갑니다.
이재하:(씩 웃고는 그대로 곧장 화영의 허벅지를 찌른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50/25/10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도검(중형)
기준치: |
50/25/10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피해: |
5 |
윤화영:
회피
기준치: |
30/15/6 |
굴림: |
58 |
판정결과: |
실패 |
(그대로 찔려 쓰러진다. 목에서부터 피가 흘러넘쳐 어지러워질수록 웃음이 더 크게 터져나온다. 살아날 수 없다는 예감이 든다. 저 자도 찌른 순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 비친 희열을 보았다. 큭큭거리며 엎어져 칼을 놓치고 만다. 이런 결말인가! 불에 타죽는 저 가련한 인간들과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이렇게 되는 것이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곧 몸에 힘이 풀려 완전히 바닥에 쓰러진다.)
이재하:하하! 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화영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는다.) 그러게 왜 또 이승으로 올라오셨습니까. 전하 때문에 괜히 제 손만 한 번 더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의 틈은 다시금 뼈저린 후회가 됩니다.
처절한 선화의 목소리와 함께 뼈가 갈라지는 것 같은 격통이 닥쳐옵니다.
살갗을 가르고 깊숙하게 찔러 들어오는 칼날이 이내 그대 심장에 닿습니다.
무엇인가가 부서지고 으스러 지는 소리가 납니다.
벌어진 가슴에서부터 후드득 피가 떨어져 내립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선화가 필사적으로 다가옵니다.
연선화:(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영의 심장을 짓누른다.) 전하… 전하!
그대의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립니다.
연선화:왜... 어찌 또다시 제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이 순간만큼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이 성치 않은 탓에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그때도, 지금도, 왜 자신은 무력하게 죽어가는 그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가? 가장 비참한 것은 화영을 끌어안은 채로 우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윤화영:(입을 벙긋거리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겨우 손을 들어올린다. 선화의 얼굴이 흐리게 보이고, 그 옆에는 나동그라진 검은 단도가 있다. 얼굴로 향하던 손이 아래로 떨어지며 칼을 쥔다. 그리고 선화의 다리 위에 던지듯 내려놓는다. 그 이상은 움직일 힘이 없었다. 원래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 일이니, 그러니 울지 말고 도망이라도 치거라.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눈이 감겼다.)
연선화:전하... 전하.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되옵니다. (다급하게 화영의 뺨을 친다.) 전하!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재하: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의 망령이 무얼 할 수 있다고 이리 기어나왔는지... 대체 무슨 잔재주를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젠 되살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금 다가옵니다.
이제 그의 칼 끝은, 명백하게 선화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화에게마저 칼을 꽂으려던 순간...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이름 없는 자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이재하:(내리치려던 칼을 멈추고는, 의아한 듯 남자를 바라본다.) 재상?
꽃 같은 얼굴을 한 남자는 달콤한 미소를 지은 채
겨우 시선을 돌리면, 남자의 입모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엉망이 된 선화의 얼굴 위로 그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떨어져 내립니다.
연선화:(마치 상대가 화영을 제게서 빼앗아 가기라도 할 것마냥, 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당신은 재상... 재상 아닙니까?
이름 없는 자:그래. 나는 이 나라의 재상이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수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자이기도 하지.
정 믿음이 안 간다면 네 왕에게 물어보거라. 내가 널 도울 수 있을지, 없을지.
연선화:(다급하게 화영의 뺨을 쳐 그의 정신을 깨운다.) 전하... 전하.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저 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전하?
이름 없는 자:하하하!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정말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 내 도움을 받지 않는대도 너는 어차피 저놈에게 죽은 목숨이니, 도박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느냐?
(몸을 숙여 선화와 눈을 맞춘다.) 네 왕은 이미 죽었어. 그리고 너는 또다시 실패했지. 하지만 이번엔 그 기회라는 것이 네게 온 것이다.
한참동안이나 그대의 흔들어대던 선화의 움직임이 멎어들고
이름 없는 자:네게 필요한 것을 내가 건네주마.
그대 품 속에 있던 은장도가 허공으로 떠오릅니다.
부름에 깜짝 놀라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결하게 꾸며져 있는 그대의 침전이어요.
어째서인지 그대를 부르는 선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 주변이 영 어색하여 다시금 돌이켜 되새깁니다.
바깥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메아리마냥 이곳까지 들려옵니다.
오늘도 도성 안 저잣거리에는 아이들의 노랫소리 요란합니다.
아무리 이 나라 가장 높은 곳에 앉은 그대라 하여도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 이 나라는 여태껏 평화로웠습니다.
그대가 다스리고 난 뒤로는 더욱이 그러하였죠.
감사의 제를 하늘에 올린 것이 몇 달 전이었는걸요.
게다가 사흘 후면 복사꽃이 만발하는 이 계절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
그런 불길한 단어가 어울릴 리 없는 곳입니다.
보세요, 오늘도 하늘이 저리 청명하고 아름답지 않던가요?
그 얼굴에 어려 있는 희미한 미소를 확인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선화에게 시찰이라도 나서자고 해볼까요.
분명 이 기이한 감각이 조금이나마 가시게 될 테니까요.
우주 (GM):시작과 끝이 맞아드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금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의 끝이 어디일지는 오로지 신께서만 아시겠지요.